[이빈섬의스토리]'아이폰 디자인' 美學 특허는 공자 작품

디자인 천재 잡스 '형상에 본질 있다'는 논어 읽었을까

빈섬의 스토리가 있는 경제

스티브잡스와 공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공자(B.C.551~B.C.479)의 언행을 담은 논어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선불교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인도의 사유와 신념 체계에 대해 호감이 있었던 흔적은 있으나, 그것이 그의 생각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살필 만한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잡스의 학력은 시애틀의 리드대학(Reed College)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퇴를 한 것으로 돼 있다. 이 학교에서 그는 캘리그래피(서체학 혹은 서예) 수업을 들었다고 한 연설에서 힘주어 말했다. 활자체의 미세한 모양에 대해 공부했는데 이것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한다. 이 대학에서는 포스터의 글씨나 서랍의 라벨에 쓰인 글씨가 독특하고 아름다웠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말은 동양 서예에서 장법(章法ㆍ글자 사이의 공간 운영법)이나 글씨끼리의 조화와 흐름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형태적 미감에 주목하고 있었다. 잡스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고풍이 느껴진다는 의미 같다) 예술적으로 미묘하다"고 말하면서, 그 매력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잡스의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 온 시리아인(압둘타파 잔달리ㆍ1931년생ㆍ정치학과 교수)이었다는 점은 그의 사유의 DNA의 비밀을 말해주는 일단이 될까.  20대 초반에 인도여행을 했고 히말라야 일대를 떠돌아다녔던 잡스는 미국으로 돌아올 무렵 삭발머리에 노란 법복을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는 불교를 믿었고 까다로운 채식주의자였다. 애플을 창업할 무렵 오리건주의 사과농장에서 선(禪)불교 동호인들과 참선수양을 하고 있었고, 그 사과농장에서 '애플'이란 브랜드가 나왔을 거라는 짐작도 있다. 
이런 정황들이 잡스의 '동양적인 사유'를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지만, 그가 말한 캘리그래피는 사실 한자 문명권의 서예와는 거리가 있는 알파벳 손글씨이며, 그의 미학이 중국의 전통 속에 들어 있는 공자의 미학에서 나왔다는 증거 또한 거의 찾기 어렵다. 아마도 잡스의 생각과 동양사상이 일치하는 점이 있다면, 그 이유를 미학적 접근 방식의 보편성에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것일지 모른다. 잡스의 미학 혹은 디자인론은 '외관과 성능은 분리될 수 없다'로 요약되기도 한다.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외관과 성능은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던 종래의 관점을 파기한 것이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은, 그 외관에 성능을 담고자 하는 그의 집요한 추구의 결과이다.  이것은 캘리그래피의 정신, 혹은 서예의 철학과도 맥이 닿아 있다. 서예는 형태라는 외관을 지니고 있다. 그 형태인 '글씨'는 다만 내용을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되기도 한다. 글씨는 글씨일 뿐이며 결코 그 내용이 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서예는, 글씨가 그것이 함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함의하는 내용 이상의 무엇까지 담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 글씨는 외관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의 일부이거나 내용의 다른 전체이다.  
첨단 기기의 형태나 인터페이스를 처음 만날 때, 그것의 기능이나 사용법에 대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을 '직관적(直觀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잡스였다. 기계와 '직관'이 만난 것은, 바로 저 디자인과 성능이 넘나드는 관계의 연장선이다. 디자인은 바로 성능을 첫눈에 이해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직관적이라는 말의 새로운 사용이다. '첫눈(初眼)'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 잡스는 소비자가 처음 아이팟과 아이폰을 접할 때의 '최초 접촉'의 심리상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기기와의 첫 대면, 그것을 그는 초심(初心)이라고 불렀고, 초심이 기계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직관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동양적 사유는 애플의 기계에 정확하게 새로운 행동양식을 표현하는 데 쓰이게 된다. 손글씨가 그 내용뿐 아니라 글씨 쓰는 이의 마음을 담아내듯, 기계의 디자인은 그 기계의 콘텐츠와 기계를 만든 잡스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다는 신념이 아이폰의 디자인 철학이다. 논어 제12장 '안연편'에는 이런 대화가 있다. 극자성이 말했다. "군자는 바탕(質)만 갖추면 이미 된 것인데, 어찌 허울(文)로 따지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안타깝네요. 공자가 말씀하신 '군자'를 거론하시다니. 천리를 달리는 명마라도 혀를 못 쫓아간다더니…."(어디선가 공자가 말씀하신 '군자'라는 얘기는 주워들으셨군요. 소문이 빠르긴 빠르군요. 이런 정도의 핀잔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자공은 말을 잇는다. "허울은 또한 바탕입니다. 바탕은 또한 허울이고요.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이 개와 양의 가죽이기도 합니다." 
저 마지막 말에 공자의 미학의 놀라운 핵심이 숨어 있다. 문유질야(文猶質也). 겉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속에 든 내용입니다.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형상에 본질 있다"이다. 우리는 형상은 본질을 가리고 있는 껍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형상 자체도 본질의 일부이거나 본질의 또 다른 전체라는 생각이, 긴요한 통찰이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호표지곽)이나 개와 양의 가죽(견양지곽)이 다를 바 없는 것은, 그 내용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형상이나 허울이라고 할 수 있는 털이 내용을 결정할 수도 있다. 즉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은 가죽 자체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디자인의 차이에서 정체성이 생겨난 것이다. 이 전도적인 발상은, 바로 잡스의 미학이 아닌가. 또 한 가지. 잡스가 말한 '직관적인 디자인' 개념은, 공자사상의 한 갈래인 양명학의 사유와 닿아 있다. 주류 유학(儒學)이라 할 수 있는 주자학은 원리의 이해와 이치의 탐구로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다. 본성(性)이 본질(理)이며, 사물을 분류하고 개념화하여(格物) 그것을 이해한다(致知)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양명학은 느낌(心)이 본질(理)이라고 주장하고, 사물을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는 사물을 볼 때 나타나는 느낌을 제대로 잘 갖춰(良知)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것은 잡스의 초심과 직관을 철학적으로 풀어주는 훌륭한 설명일 수 있다. 양명학의 양지(良知)는 잡스가 애플 디자인 속에 넣고자 했던 '소비자의 마음'에 근사하게 닿아 있다. 스티브 잡스와 서예, 그리고 논어와 양명학의 내연(內緣)을 풀어가는 것은, 고인이 된 한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에 대한 분석으로 그칠 문제는 아니다. 여기엔 동양적 미학으로 세계의 다양한 욕망을 사로잡은 잡스의 전략이 지닌 함의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 서구의 한 사람이 인류를 매료시킨 방식이, 공자가 통찰한 '형상 또한 본질이며 본질 또한 형상이다'는 미학적 명제의 참신한 실천이었다는 점은, 향후 '넥스트 잡스'의 출현을 기다리는 우리에겐 상당한 울림이 있지 않은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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