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대담=이의철 금융부장"은행권 실적이 뚝뚝 떨어지는 이 때, 국민은행은 3분기 수신이 4조원이나 늘었어요. 대출 규모도 지난해 수준을 따라 잡았지요. 돈 잘버는 착한은행이 될 겁니다.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우리투자증권이 꼭 필요해요. 반드시 가져옵니다."금융권을 향한 시선만큼 얄궂은 것도 드물다. 돈을 잘 벌면 '금융기관'이 너무 번다고 뒷말을 하고, 돈을 못 벌면 '금융회사'가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최고경영자(CEO)에게 참 척박한 토양이다. 시우론(時雨ㆍ때 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과 함께 취임 후 넉 달을 보낸 임영록 KB금융지주회장은 이런 동토(凍土)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진 실적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잘 잡아왔다. 새 경영진에 대한 기대감은 주가도 올려놨다. 취임 초 3만5000원선이던 주가가 이제 4만원을 넘본다. 명동 집무실에서 만난 임 회장은 안팎의 호평에도 들뜬 기색이 없었다. 임 회장은 "집무실만 달라졌을 뿐 KB금융으로 출근하지 벌써 3년이 넘었다"며 "사장에서 회장으로 한 글자가 달라졌을 뿐인데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비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장으로 지낸 3년은 알찬 예습시간이었다. 임 회장은 "최고 의사결정자가 아니면서도 여러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많았다"면서 "그 시절 경험이 회장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백투더 베이직(기본으로 돌아가자)'이라는 담백한 취임 일성은 사장으로 느낀점을 집약한 결과다. 겉치레를 질색하는 성격도 '심심한' 연설에 한 몫을 했다. 임 회장은 "종전 CEO들이 제시한 훌륭한 설계도는 이미 나와있다"면서 "터를 다지고 벽돌을 쌓아 한 층씩 집을 지어가는 게 내 몫"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용 구호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리딩뱅크 지위 회복' 임 회장이 내건 비전은 명확하다. 그는 "3000만명이라는 은행권 최대의 고객과 1200개 이상의 영업점을 통해 소매금융을 키우고, 이걸 바탕으로 저성장ㆍ저수익의 파고를 넘겠다"고 말했다. 실거래 고객은 1600만명 안팎, 여기서 4분의 1인 400만명이 은행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고객들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시우론'과 업계 1위의 포부가 상충된다는 지적도 있다. 임 회장은 이에 "장기적인 안목"을 이야기 했다. 그는 "시우금융으로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의심하기도 하지만, 때 맞춰 내리는 비와 같은 존재로 신뢰를 쌓아가면, 장기적으로 더 크게, 더 길게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확신했다. '돈 버는 착한금융'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임 회장은 "그러자면 은행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수익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투자증권 인수전 얘기로 화제가 넘어갔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달 예비입찰을 마치고 다음 달 16일 본입찰에 들어간다. 자산 기준 1위, 자본금 기준 2위의 대형 매물이다. 인수전에 뛰어든 KB금융과 농협금융은 양보없는 싸움 중이다. 우리투자증권과 합병한다면, KB투자증권(자본금 기준 22위)이나 NH농협증권(16위) 어느 쪽이든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임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투자증권을 반드시 가져와 비은행 부문 수익을 늘리고 사업을 다각화하겠다"고 단언했다. 관련 작업은 착착 진행되는 중이다. 재무ㆍ회계 분야 전문가 수 십명을 투입한 태스크포스팀(TFT)이 모든 경우에 수에 대비하고 있다, 임 회장은 KB금융의 승리가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했다. 그는 "선진국을 보면,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늘어날 때 금융의 기여도가 상당히 높았다"면서 "KB가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면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인수전에서 넘어야 할 '내부의 산' 얘기도 꺼리지 않았다. 이사회의 동의 없인 외형 확대가 불가능하다. 임 회장은 "경륜있는 이사들의 지혜를 빌리는 건 아주 중요하다"며 "평소 꾸준히 소통해 상호 신뢰를 쌓고 있다"고 했다. ING생명 인수를 시도했던 전임 어윤대 회장은 이사회를 설득하지 못해 뜻을 접어야 했다. 금융권의 화젯거리였다.
한 시간여, 가까운 미래를 얘기하던 임 회장은 사이사이 조직의 기강잡기에 나설 뜻도 분명히했다. KB금융은 잇따른 해외발 악재로 골머리를 썩는 중이다. 그는 전임 경영진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번진 도쿄지점의 1700억원 부당대출 문제를 언급하며 "제대로 책임을 규명하고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행은 곧 해외점포의 여신관리 강화 대책을 내놓는다. 정리=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사진=백소아 기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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