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구원서사와도 맞물린 인간적 관점의 문제'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올 하반기 살인이라는 극단의 폭력을 다룬 서사가 문학적 담론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7월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문학동네)에 이어 '향'(백가흠, 문학과 지성), 파과(구병모, 자음과 모음), '달고 차가운'(오현종, 민음사), '살육도시'(백승재, 새파란상상), '펀치'(이재찬,민음사) 등 살인소설 출간이 봇물을 이룬다. 이외에도 정유정 소설 '28'속에 존속살인을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처럼 살인을 부분적으로 다룬 소설도 부지기수다. 살인자, 살인청부업자가 소설의 등장인물로 전면 부각된 것과 관련, 문학은 물론 사회비평 영역의 시선도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이원석 사회문화평론가는 "살인은 구원 서사와도 맞물린 인간적 관점의 문제"라며 "(살인은) 우리 시대의 기본적인 메타포일 만큼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위적 수단을 동원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살인이라는 하드보일한 내용이 소설에서 전면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최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이어 "진실은 온도가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열정을 배격하는 현실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소재를 수용토록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속 주인공은 연쇄 살인범 노인이다. 주인공은 치매라는 병에 걸려 지난 인생이 전복당할 위기에 놓인다. 주인공은 딸 은희를 양녀로 거둬 살고 있다. 과거 자신이 죽인 여자의 딸이다. 헌데 누군가가 그녀를 죽이려 한다. 딸은 노인이 지켜야할 유일한 존재다. 노인은 결국 연쇄 살인범은 찾아내고, 그를 죽임으로써 딸을 보호하려고 한다.  "나는 5등급이다"로 시작되는 소설 '펀치'속의 주인공 방인영은 '아버지 방 변호사의 경제적 후원과 엄마의 정신적 억압, 학교와 종교의 변태적 시스템에 속박돼 있'는 고 3수험생이다. 교회에 헌신적이면서도 딸의 인생을 제 뜻대로 끌어가려는 엄마, 돈과 권력 있는 자들을 위해 법조문을 연구하는 아버지,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여기는 학교 모두가 파괴의 대상이다. 결국 인영은 존속 살인이라는 과격한 방식을 동원한다. 여기서 작가는 "니가 살인자라 부모를 죽인 걸까 ? 아니면 부모가 널 살인자로 만든 걸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백가흠의 두번째 장편 '향'에는 다문화적이며 어둡고 음습한 전력을 지닌 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신성한 숲'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공동체의 평온을 지켜려는 자와 외부 범죄자간의 살육을 다룬다. 백승재 작가의 첫 장편추리소설 '살육도시'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살인 게임을 기둥 줄거리로 삼는다. 사채에 눌려 막장 인생을 살고 있는 홀아비 명환은 김 실장이라는 의문의 사람에게 살인 제안을 받으면서 쫓고 쫓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달고 차가운'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1992년 사귀던 여대생이 어린 시절부터 의붓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성과 공모, 가해자를 살해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지용이 어린 시절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를 해야 했던 여자친구를 대신해 살인을 저지른다.이처럼 소설속 주인공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정서는 '결핍'이다. 또한 연대와 상실, 단절, 입시 지옥, 성폭력, 자본주의 트릭, 무한 경쟁 등 여러 사회문제에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다. 소설에서 작가들은 포르파일러처럼 주인공의 심리와 살인 방식에 대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며 속속들이 관여하고 있다. 어느 경우 살인을 놀이나 게임처럼 펼치거나, 유쾌하며 가볍게 처리하기도 한다. 소설속 세상은 작가의 고유 영역이기는 하나 분명 소설이 일정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체코의 작가 밀란 콘데라는 "문학은 윤리적 판단이 정지된 땅"이라고 단정한다. 슬픔을 가진 자들이 자살에 감염된다고 해서 괴테의 '베르테르 효과'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인소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더욱 절실해졌다. 소설밖의 사회문화 비평가가 가져야할 책무는 고유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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