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연구비에 공(0) 하나 더 달기

김소영 카이스트 교수

지금은 중학생인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 때 야구를 좋아해서 나중에 야구 선수가 되면 고액 연봉을 받아 엄마, 아빠 호강시켜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연봉을 얼마나 받을 생각이냐고 하니 무려 '백만원'이나 받아서 엄마, 아빠 노후에 집도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린다고 해서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초등학생 눈에 공(0)이 여섯 개나 달린 돈의 가치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유학 동안 받은 장학금은 대부분 학비로 들어가고 매달 조금씩 나오는 생활비로 살았다. 학기 초 등록처에 들를 때마다 내 손을 거치지 않고 공이 줄줄이 달린 돈이 곧바로 학교 계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애가 셋이라 다섯 식구가 1200달러 남짓한 한 달 생활비로 근근이 살았는데 등록고지서에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몇만달러의 돈이 내 이름으로 오가는 것이 무척이나 초현실적이었다.  최근 여러 학과 교수들이 모여 융합 연구과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규모로 연구를 진행할지 논의하는 자리에서 인문사회 쪽 교수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연 2억~3억원 정도 소요될 거라고 했다. 공대 쪽 교수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라면 연 20억원은 들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전공하는 연구개발정책 분야는 연구 주제로 다루는 과제나 사업 규모는 수억에서 수백억까지 다양하지만 정책 관련 연구비 자체는 5000만원 정도여서 공이 몇 개 더 들어간 연구사업을 접하면 마치 등록고지서의 공이 여럿 달린 등록금을 다시 보는 느낌이 든다.  대학원생일 때는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교수가 되어 외부 과제를 하면서 늘 궁금한 것이 적정 연구비 규모였다. 외부 과제를 신청할 때 연구목표, 내용, 추진방법, 기대효과 등 상당히 정형화된 연구계획서를 내게 되는데 과제 연구비 총액은 대개 미리 정해져 공고된다. 그런데 최근 만난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이 '교수들은 참 부정직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 이유는 2억원짜리로 과제를 내든 3억원짜리로 과제를 내든 똑같은 계획서를 제출하는데 그럼 2억으로도 할 수 있는 과제를 가지고 3억 달라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무렵 만난 공대 교수의 정반대되는 불만이었다. 2억짜리 과제에 지원하는 데도 3억짜리만큼 한다고 해야 겨우 연구비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도대체 어떤 연구를 할 때 어느 만큼 드는지 연구비를 주는 입장에서도 또 받는 입장에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이나 이론 물리처럼(농담이지만) 연필이랑 종이만 있으면 되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슈퍼컴퓨터, 입자가속기처럼 고가의 거대 연구장비가 필요하고 연구비가 공이 몇 개 더 되는 분야도 있다. 구체적인 연구 내용에 따라 연구비가 적절히 계산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불확실성을 내포한 과학기술 연구의 특성상 연구자 자신도 연구 착수 시점에서 실제 소요되는 연구비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무리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는 A라는 기관에서 받은 연구비가 불충분해 B기관에서 받는 연구비로 일부 갈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구자 입장에서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B기관에서 보면 연구비 전용이다.  적정 연구비 규모의 문제는 비단 소요 연구 경비를 계산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연구비와 연구 성과는 어느 수준까지는 비례적으로 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불필요하게 많은 연구비 관리로 인한 과도한 행정업무 때문에 오히려 연구성과 창출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 주변에 연구개발기관이 많아서 그런지 후자처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연구팀이 얼마나 많겠냐고 한다. 아무튼 연구비에 제대로 공(0)을 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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