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서기자
1950년대 국내 최초 패션쇼를 열었던 노라노. 당시 열렸던 패션쇼의 한 장면.
31일 개봉하는 다큐영화 '노라노'는 우리나라의 '패션'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 '두개의 문'으로 화제가 됐던 연분홍치마가 제작을 맡았다. 영화는 지난해 열린 '노라노 60주년 기념 전시회'인 '라 비 앙 로즈'를 준비하는 과정을 큰 줄기로 삼는다. 16일 서울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한 노라노 선생은 "내가 현재 만 85세인데, 30대 후반의 손녀딸 벌 되는 애들이 와서 영화를 찍겠다고 했는데, 믿음직스럽지 않더라. 근데 3년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그냥 내버려뒀다"고 말했다. 여전히 곱게 눈화장을 하고, 속눈썹을 정성스럽게 붙인 그의 모습은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디자이너로서의 60년의 세월을 견뎌낸 그의 손은 끊임없는 가위질에 굳은 살이 박히고, 바늘에 찔려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이혼녀의 신분으로 그 당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패션계라는 화려한 세계에서 중심을 지키는 것 또한 힘든 일이었다. "지난해 내 작품 전시회를 '라 비 앙 로즈'라고 정했다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젊은이들한테는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도 난 장밋빛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 패션 디자이너는 중노동의 직업이고, 언제나 실내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햇볕을 제대로 쐰 적도 없다. 늘 사계절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6개월, 1년을 빨리 살아야 했다. 죽도록 일만 했는데 '라 비 앙 로즈'라니..."한국의 패션 디자인의 산 증인 '노라노' 디자이너.
이 기념 전시회를 준비했던 서은영 스타일리스트는 "코코 샤넬, 소니아 니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과 같은 선상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내 나라의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이 슬펐다"고 말한다. 가수 윤복희는 "노라노 선생은 옷을 통해 사회의 고정관념을 확 뒤집어버렸다"고 찬사를 보내고, 배우 엄앵란은 "감독은 연기자를 연출하지만, 노라노 선생은 전체 의상을 연출했다. 대중문화의 기수였다"고 고백한다. 노라노 선생은 지난해에 이어 내년에도 기념 전시회를 한 번 더 열 생각이다. 주요 단골들이 전시를 위해 선뜻 기증한 옷들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400여벌의 옷들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패션의 역사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패션은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다. 나는 장인이고 기술자다. 여기에 예술성을 더할 순 있지만 예술은 아닌 거다. 아까 내 인생이 '장밋빛 인생'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어느 의미에서는 장밋빛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까."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