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스토리]한명회 부귀 덕? 강남 富村 1번지 '압구정'

한명회가 세운 동호의 정자였던 '압구정'세월 흘러 강남 부동산부자 1세대 본향으로 변신백화점 쇼핑센터 외국브랜드 즐비…'오렌지족·야타족' 만들어내기도최근 경기불황과 재건축 사업 주춤하면서 아파트값·임대료 기세 주춤[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곧 다가올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지나온 길을 회상하던 화면 속 한 노인. 개봉 13일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관상'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주인공은 수양대군(세조)도, 김종서도 아닌 한명회다.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려놓은 책략가, 4번이나 공신에 오를 만큼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그의 손에서 시작된 것은 비단 조선의 쿠데타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표 부촌 중의 하나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동도 사실상 한명회로부터 시작됐다. 1476년 당시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던 한명회는 여생을 편히 보내기 위해 동호(조선시대 옥수동 앞의 한강)에 정자를 지었다. 드넓은 강이 눈 앞에 펼쳐지고 주변 산세가 빼어난 정자에는 권력자들과 명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압구정은 중국 사신들도 조선을 방문할 때면 반드시 들렀다 가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한명회의 정자에 '압구정(狎鷗亭)'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명나라 관료이자 문인인 예겸이다. '압구'란 '갈매기와 친해 가깝다'라는 뜻으로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동화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고즈넉함과 평화로움이 묻어나는 겸재 정선의 '압구정도'에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진 당시 풍경은 한명회가 왜 이곳에 정자를 세웠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권력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고자 지은 정자는 오히려 그의 권세를 확인시켜 주는 곳이었다. 조선 최고의 권세를 자랑하던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곳. 명나라 사신들도 들러 시 한 수를 읊고 가던 정자가 있던 이곳은 2013년 현재 아파트 단지 사이에 남겨진 비석만이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정자도 부침 많던 주인의 운명을 닮은 것일까.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압구정은 이제 비석만 외로이 남아 아파트 숲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만을 간간이 받아내고 있을 뿐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남아 있는 표지석이 옛 '압구정'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1972년 개발촉진지구 1호 지정압구정 일대 본격 개발 붐 일며 '고공행진'도시개발 앞에 '정자'를 잃은 압구정은 대신 '강남'을 품었다. 1972년 정부가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을 만들어 영동지구를 개발촉진지구 1호로 정하면서 이 일대를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1975년 '강남구'가 탄생했고 1년 후 압구정동은 아파트지구로 지정됐다. 1973년 5만3000명에 불과하던 강남구의 인구는 5년 후 21만6000명까지 늘어나며 무서운 속도로 팽창했다. 정부의 도시개발 계획에 맞춰 민간업체들도 본격적인 주택 건설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강남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중대형 면적의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면서 중상류층이 대거 이동했고 강남 부동산 시장은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배밭과 과수원이 덮고 있던 땅은 건설사의 장비를 보관하는 모래밭으로, 다시 아파트 단지를 품은 금싸라기로 몸값을 높여 갔다.  1975년 1차 사업을 시작으로 14차까지 진행된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흥행'에 성공하자 한양아파트, 우성아파트, 미성아파트 등이 잇따라 세워졌다. 지금의 한남대교인 제3한강교에 이어 1985년 동호대교까지 완공되면서 압구정은 서울에서 제일 잘 나가는 동네로 자리매김했다. 고급 백화점과 쇼핑센터, 외국 브랜드도 앞다퉈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호젓한 자연을 배경으로 두르고 있던 압구정은 한글보다 외래어 간판이 즐비하고 최신 유행 문화를 뿜어내는 곳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1990년대 강남 일대의 부유한 20~30대 젊은 층들의 소비문화와 자유분방한 삶을 반영한 '오렌지족', '야타족' 등의 용어는 압구정을 넘어 대중매체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최신 유행을 만들어내며 젊은 층을 흡수하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도 불야성을 이뤘다.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압구정역 앞 대로변. <br />

그러나 돌고 도는 유행 앞에 압구정도 기력을 다한 것일까. 서울 도심에 압구정을 대신할 공간이 여럿 생겨나고 2000년대 후반 경기 불황의 그림자까지 드리우면서 이곳의 기세도 조금씩 꺾였다. 치솟던 아파트 값과 상가 임대료도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창가에 '임대'를 써 붙인 상가가 늘고 부동산과 집주인들은 흔들리는 집값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009년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 일환으로 30% 기부채납을 하면 초고층 아파트의 건축을 허용하는 '한강 공공성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압구정은 또 한번 '뜨거운 장소'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기부 채납률을 둘러싼 주민 반발과 갈등 등으로 정비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서 주춤하고 있다. 올해 4월 서울시가 기부채납 비율을 15%로 완화하고 주민들이 안전진단 요청을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긴 했지만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권세가의 아름다운 정자에서 흐드러진 배꽃을 피워내던 곳. 2013년 9월의 압구정은 대로를 기준으로 아파트 촌에는 백발 어르신들의 느릿한 발걸음이, 성형외과 병원이 즐비한 곳에는 미(美)를 찾는 젊은이들의 빠른 발걸음이 교차한다. 어떤 이는 압구정을 '도심 속 실버타운' 같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얼굴부터 몸까지 못 바꾸는 것이 없는 '첨단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공신'과 '역적'의 극단의 평가를 받았던 한명회의 두 얼굴처럼 압구정도 많은 얼굴을 품고 있다.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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