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1장 뒤꼬인 사랑의 방정식(185)

한 쪽 귀퉁이가 무너진 채 텅 빈 우사는 어쩐지 괴기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몇 해 전인가 이곳에도 구제역이 돌았지요.”하림이 의아해 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양 앞서 가던 수관선생이 고개를 외로 꼬고 돌아보며 말했다.“소독을 하고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하고 난리를 피웠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여기서도 결국 수십마릴 통째로 살처분인가 뭔가, 하는 걸 하고 말았지요. 저어기 아래 느티나무 보이죠? 그 부근에 그때 죽인 소를 파묻어놓는 소무덤이 있는데.... 혹시 가봤나요?”“아뇨.”“그럼, 가보지 않는 것이 좋을거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잡초만 우거져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죽은 소들의 억울한 원혼이 감돌고 있으니까.” 믿거나말거나 한 이야기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믿거나말거나, 였지만 듣고 보니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괜히 오싹해지는 느낌에 하림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한번 으쓱하였다.“근데 말이오. 소가 얼마나 영물인지, 살처분 결정이 내려지기 얼마 전부터 그걸 알아차리곤 울어대기 시작했어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간 소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처럼 말이오. 죽음의 그림자가 멀리서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는 걸 예감했던 거죠. 그 울음소리가 한동안 밤낮으로 골짜기를 가득 메웠어요. 소들이 지르는 고함소리는 정말 정신이 다 오싹해질 정도로 처절했지요. 아무리 달래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아마 누군가 하늘 위에서 보았다면 삼천리 방방곡곡이 그 무렵 소의 울음소리로 채워져 있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요.” 그리고나서 그는 여전히 믿거나말거나 한 이야기를 혼자 중얼거렸다.“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가끔 빗소리에 섞여 그때 생매장되었던 소들 울음소리가 들리곤 한답니다. 새끼소를 찾는 어미소와 어미소를 찾는 새끼소.... 지아비와 지어미를 찾는 처절한 울음소리 같은 거죠.”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수관선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하긴 그러고도 남을 것이었다.한창 구제역이 돌 무렵, 언젠가 하림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살처분 주사를 맞고 새끼에게 마지막 젖을 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네발로 버티고 서있는 어미소와 죽어가는 애미를 모르고 자기 역시 곧 죽을 목숨이면서 젖을 빨아대느라 바쁜 새끼소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지나놓고 나면 잊어버리는 게 인간이라 하지만 그때 산채로 파묻힌 소와 돼지와 닭의 원혼이 어딘가에 떠돌고 있으리란 건 결코 만들어낸 이야기 같지만은 않았다. “인간에게 그런 권리가 언제부터,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그렇게 죽이는 건 죄악이지요. 아주 죄악이지요! 대량학살이나 다름없는 거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만이 학살이 아니지요. 생명이 생명을 죽이는 건 모두 학살이지요.”그는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아무튼 그 옛날 평화로웠던 골짜기는 이젠 옛 말이 된지 오래라우.”뒷짐을 진 채 걸어가며 수관선생이 말했다. 그의 어깨가 어쩐지 좁아보였다.“외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듯이 모든 생명들이 병을 앓고 있는 중이라오. 사나운 기운이 이곳까지 뻗혔다는 말이오. 그러니 어찌 소나 돼지인들 온전할 리가 있겠소.”하림은 자기 생각에 잠겨 묵묵히 그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멀리 발 아래 저수지가 보였다. 햇빛을 받은 저수지의 표면은 마치 커다란 유리창처럼 번쩍거렸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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