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올해 초 블룸버그·톰슨로이터 엠바고 위반 여부 조사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지난 2011년 10월 베이징시 시청(西城)구 법원은 국내총생산(GDP),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등 주요 경제지표를 증권회사 관계자에게 미리 알려준 공무원과 중앙은행 간부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전 국가통계국 비서실 쑨전(孫振) 부주임은 징역 5년을, 런민(人民)은행 연구소 통화금융사(司)의 우차오밍(伍超明) 부주임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에게는 국가기밀누설죄가 적용됐다.중국 국가통계국은 이에 앞서 주요 경제지표가 새나가는 일을 막기 위해 통계치가 산출된 지 24시간 이내로 발표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국가통계국 관계자는 “통계치 산출 후 발표까지의 시간이 길고 중간 절차가 복잡할수록 유출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중국은 시장경제의 제도와 관행이 시행착오를 거쳐 자리를 잡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경제지표 사전 유출과 이를 차단하는 통계 발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그 과정의 하나다. ◆언론사 엠바고 위반 의심= 금융시장의 역사가 깊고 운영 시스템이 잘 갖춰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경제지표 사전 유출의 의혹이 간혹 제기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올해 초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지표를 발표 시각에 앞서 알린 혐의로 언론사들을 조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FBI는 블룸버그통신, 톰슨로이터, 다우존스 등 언론사가 일부 투자자에게 보도금지 시한인 엠바고를 깨고 경제지표를 제공했는지 조사를 벌였다. FBI는 트레이더들의 거래에서 경제지표를 발표 시점보다 몇 초 일찍 입수한 것으로 보이는 양상을 파악하고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언론사 외에 노동부, 상무부, 재무부의 경제지표 관련 업무 전반도 들여다봤다. 지난해 3월 미국 경제방송 CNBC는 실업률과 주간 신규실업수당 신청자 수 등 고용지표가 발표 전에 금융회사로 유출되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CNBC는 노동부가 고용지표 관리와 배포를 둘러싼 정보보안 절차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이와 관련한 업무를 산디아국립연구소가 맡았다고 전했다.가장 구체적인 의혹은 지난 2004년 4월에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농업부문을 제외한 취업자 수 증가폭이 4년래 가장 컸다는 통계 수치가 발표되기 직전에 금융시장의 거래가 급증했다는 점을 들어, 이 지표가 발표 전에 시장에 새나갔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보도했다.HSBC의 외환 담당 애널리스트인 데이빗 블룸은 “미국 고용지표가 발표되기 전에는 대개 거래가 잠잠해지고 지표가 발표되면 트레이더들이 거래에 나선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발표 2분 전부터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 전 독일 채권, 미국 재무부 국채선물, 외환시장에 차례로 대형 거래가 터졌다고 전했다. ◆톰슨로이터 2초 장사= 정부에서 집계해 발표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미시간대학 소비자신뢰지수가 유료 고객에게 먼저 제공됐다는 사실이 지난 6월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톰슨로이터가 월 약 6000달러를 내는 고객들에게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를 2초 먼저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톰슨로이터는 미시간대로부터 소비자신뢰지수를 사전에 배포하는 권리를 1년에 110만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사들였다.먼저 입수한 정보는 금융시장에서 돈과 직결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월15일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가 발표되기 직전 주식시장 거래에서 사전에 이 지수를 제공받은 트레이더들이 큰 차익을 챙겼다고 지적했다. 트레이더들은 주식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다. 공매도 대상이 된 주식 대다수가 지수 발표 후 5분 동안 하락했다. 뉴욕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톰슨로이터는 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미시간대 소비자신뢰지수 ‘2초 장사’는 경제지표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했다. 지표가 공개되기 전 누군가는 어떻게든 수치를 입수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확산됐다. ◆지표 누출 확인된 건 한 번= 미국에서 경제지표가 발표 전에 새나간 확인된 사례는 한 건이다. 실업률이 발표를 무려 하루 앞두고 누출됐다. 금융회사에서 빼낸 것은 아니었다. 실업률 통계를 작성하는 노동통계국(BLS) 측 실수로 발생한 사고였다. 1998년 11월5일 목요일 오전 8시 무렵이었다. 경제분석회사 스톤앤드맥카시 리처치의 애널리스트 레이 스톤은 BLS의 웹사이트 이곳저곳을 클릭하고 있었다. 분석목록이라는 이름의 탭이 보였고, 그것을 클릭하니 새로운 소식 버튼이 나왔다. 버튼을 클릭하자 10월 고용지표가 나왔다.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8시30분에 발표 예정이었던 수치가 하루 먼저 웹사이트에 공개됐고, 그 사실을 레이 스톤이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이다. 레이는 이 고용지표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에게 떠오른 첫째 생각은 ‘이것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가 아니었다. 그는 경제분석가답게 ‘이 통계를 바탕으로 내 기존 전망을 바꾸면 내가 예측력이 있다고 인정받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의무감에서 BLS에 이 사실을 알리기로 한다. BLS에 전화해서 알고 지내던 관계자를 바꿔달라고 했지만 회의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도 회의 중이었다. 스톤은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니 다른 사람과라도 꼭 통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관계자가 전화를 넘겨받았고 스톤은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직원은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스톤은 웹사이트 어디를 클릭하면 10월 고용지표가 나오는지 알려줬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오, 노!”라는 탄식 소리가 들렸다. 스톤은 “헤지펀드 중에서 이 자료를 본 곳이 있을지 모른다”며 “5분의 시간을 주겠다”고 말했다. BLS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5분 뒤 고용지표를 자신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5분 넘게 기다렸지만 BLS는 연락해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용지표를 자신의 웹사이트에 게시했고, 곧바로 블룸버그를 비롯한 언론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그제서야 BLS로부터 전화가 왔고, BLS는 하루 앞당겨 고용지표를 공식 발표했다. 이 사례는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이 지난해 8월 보도한 ‘미국 경제 최대 비밀 지키기(Keeping the biggest secret in the U.S. economy)’ 기사에서 들을 수 있다. 실업률을 시장에서 최초로 본 스톤은 이 수치를 활용해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을 뻔했던 사고는 별 탈 없이 수습됐다. 새로운 투자 기법으로 무장한 트레이더들이 눈깜짝할 순간이라도 먼저 지표를 입수하기 위해 반칙을 주저하지 않는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담’이다. 백우진·조목인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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