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온통 공사장인 백령도의 '역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2013년 8월, 백령도의 여름은 활기찼다. 고요했던 섬의 하늘은 분주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 후 북한 상륙정을 잡기 위해 배치됐다는 10여대의 공격 헬기들이 좁디 좁은 섬 주변 상공을 이리 저리 누비고 있었다. 한 군 관계자는 "이곳에 배치된 병력은 연대 규모지만, 화력ㆍ장비 등의 전력은 군단급"이라고 귀뜸했다. 섬 곳곳에선 자주포와 탱크들이 굉음을 내며 훈련 중이었다. 민간인들도 이날은 '을지 훈련'에 따라 발령된 긴급 대피 상황 훈련 경보에 따라 마을 한가운데 마련된 최신식 대피소에 몰려 있었다. 그런 가운데 온 동네가 '공사중'이었다. 동네 곳곳에 깔끔한 새집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정부가 80%(최대 4000만원)의 비용을 지원하는 노후 주택 개량 사업 덕분이었다. 서해 먼 바다 한가운데에서 신비함 속에 고요히 머물러 있었던 서해 5도 지역은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많이 부산스러워졌다. "위험해서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세간의 생각과 달리 인구와 관광객이 오히려 늘어났다. 정부가 총 9000억원대 규모의 '서해5도특별지원법'을 만들어 항만시설을 현대화하고 생활 지원금(월 5만원)을 지급하는 등 대대적인 지원에 나선 덕이었다. 이로 인해 '안보 재테크'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서해 5도에 이사를 가면 노후 걱정은 없겠다는 말들이 오갈 정도였다. 꽃게잡이와 섬 농사에 의존해 한적하고 고요하게 살던 서해 5도 주민들은 2010년 이후 인구 증가와 부동산 값 상승률 전국 1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당혹'해할 정도다.그러나 '안보 위기'에 의존하는 이같은 서해 5도 지역의 '활기'는 주민들에게 일종의 '역설'로 보였다. 안보 위기로 일시적으로 생활이 나아지긴 했지만, 결국은 그들의 생존ㆍ번영을 가져다 줄 궁극적인 키워드는 '평화'였기 때문이다. "안보 불안이 제일 큰 문제다. 우리는 평화만 보장되면 관광객과 꽃게잡이로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어느 백령도 주민의 말이 귀를 맴도는 이유다.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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