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김민진 차장
집 가진 사람이 '을'인 때가 가끔 있다. 이름하여 '역(逆)전세난'이 발생할 때인데 역전세난은 주택 매매가격이 하락하거나 인근 새아파트의 입주물량이 갑자기 늘어날 때 발생한다. 역전세난이 생길 때는 주택 소유주가 임차인에게 전세값이나 월세값을 깎아줄테니 재계약을 하자고 조른다. 특정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아주 드물게 한번씩 볼 수 있는 생경한 풍경이고, 전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요즘에야 꿈같은 남의 나라 얘기다.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이 '을'이 되는 건 그에 비하면 규칙적이다. 정치인들은 5년(대선ㆍ총선) 내지 4년(지방선거)에 한번씩 을이 되는데 이게 바로 표를 얻기 위한 지극히 자발적 행위다. 지방선거가 9개월 남짓 남았지만, 벌써부터 선거바람이 느껴진다. 그동안 얼굴보기 힘들었던 국회의원이나 구청장들을 요즘엔 민방위 비상소집 훈련장이나 학부형 단체 관련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구립 문화생활체육센터 같은 곳의 구정 홍보 게시판도 유독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지역민들과의 접점을 늘려 민심을 가까이 한다면이야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건 민심이 아니라 표심(票心)에만 관심이 있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얼굴과 손에 대한 관심이다. 한국사회에서 안면(顔面)은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힘을 아는 사람들이다. 악수하는 손은 바로 표를 찍는 손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실감케하는 징후는 또 있다. 민원 처리속도가 신속해 지는 것에 비해 인ㆍ허가나 정책 결정은 더뎌지기만 하는 것이다. 임기 초 패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책임 못 질 선심 공약성 발언이 난무한다. 이맘 때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오해를 살만한 각종 인ㆍ허가나 정책 결정에 소극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종합적인 판단, 신중한 결정이라면 좋으련만 빠른 판단과 인ㆍ허가 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 서류나 심사기준 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정성적인 고려요소가 하나 더 생겨 일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다. 배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신지 말라고 했다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지나치게 신중한 결정이 행여나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투자도 가려받는 경우다. 전부터 알던 지내던 지자체 공무원 선배는 요즘 공무원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노'(怒)와 '애'(哀) 두 가지를 찝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는 정부의 협박성 절전요구에서 오는 노여움이요, 다른 한가지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시즌이 시작됐어도 이젠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가련함이란다. 찬바람이 불면 시작될 선거정국은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숙원사업이라도 그대로 묻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눈치보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기업환경 조성이 먼저다.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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