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W 리더십]국내 원두커피의 大母…'女벤처 300전사' 키운다

①이은정 한국여성벤처협 회장ㆍ한국맥널티 대표

이은정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ㆍ한국맥널티 대표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기업을 이끄는데 있어 '여성'이라는 점은 강점과 약점 중 어느 쪽에 속할까.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남성과는 다른, 여성만이 지닌 강점을 역설하는 이가 있다. 17일 서울 서초동 한국여성벤처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은정 한국맥널티 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그의 도전기는 여성 기업인이 귀한 현실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원두커피 제조업체인 한국맥널티는 국내 시장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커피 레시피와 특허권만 500여종에 달한다. 그만큼 현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매년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원두커피라는 개념이 채 자리잡지 않던 시절 회사를 설립한 그녀는 국내 원두커피 시장의 개척자라 불릴 만하다.  지금은 16년차 CEO인 그녀지만 대학교 시절부터 창업의 싹이 보였던 것은 아니다. 되레 그 반대였다. 그녀는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학문이 생소하더라. 특히 회계가 어려웠다. 대학교 때는 경영자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웃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는 1993년 원두커피를 수입해 대형할인점과 백화점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입사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둘 때 그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용기의 배경으로 그녀는 "제주도 해녀였던 할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제주도의 삼다(三多) 중 하나인 여자는 옛부터 바닷물을 헤치며 사내들을 먹여 살렸다. 제주도 해녀의 푸른 도전정신은 그렇게 2년차 직장인을 회사 밖으로 끌어냈다. ◆외환위기 때 원두커피 제조업 뛰어들어 = 이 대표가 한국맥널티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원두커피 제조업에 뛰어든 건 지난 1997년 터진 외환위기가 계기였다. 원ㆍ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자 수입원가 부담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사업 중단을 고민하던 그녀의 머릿 속에 "원두커피를 들여오기 힘들면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종의 역발상이었다. 기존 유통업을 하며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수요는 충분히 확인한 터였다. 수입에서 직접 제조로 전환하니 자연스레 공급가격이 내려갔다. 한국맥널티가 원두커피 1위 업체로 올라선 배경이다. 안정적으로 커피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지난 2006년 제약 공장을 인수하며 제약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커피 공장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기회였다. 커피와 제약은 이질적이지만 그녀는 기술력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았다. 매출액 대비 13%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한 결과 약을 복용했을 때 녹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특허기술을 확보했다. 이를 활용하면 적은 양을 복용해도 신체 내 적재적소에서 약이 활성화 돼 효과를 볼 수 있다. 코감기약도 생산해 국내외에 공급 중이다.  그녀는 "벤처는 빛의 속도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야 말로 벤처의 성공 요건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기업은 살아 숨쉬는 생물과도 같아서 안주하면 안 된다. 사장부터 직원까지 끊임없이 도전해 변화 진화하는 기업만이 벤처"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경영인이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플을 창업한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걸쳐 매번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들며 시장을 창조해 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녀가 그리는 벤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내일 죽는다고 해도 지금 하는 일을 할 텐가'라는 잡스의 말을 좋아한다"며 "최근 강조되는 창조경제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며 아쉬워했다.  이 대표는 올 초부터 국내 여성 벤처인들의 수장인 여성벤처협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03년 처음 협회의 문을 두드린 지 10년 만이다. 그동안 협회 내에서 이사, 부회장, 수석부회장을 거치며 회사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후배 벤처인들에게 되갚아줘야 할 때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올해 야심차게 여성벤처 멘토링 캠페인을 준비 중인 것도 그래서다. 그녀는 "새내기 벤처의 아이템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가 많다. 선배들과 조인트 벤처 식으로 연계하면 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녀는 영화 '300'에서 아이디어를 따 "여성 벤처 300 전사를 만들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이들을 기반으로 제2, 제3의 후배 벤처들을 도약시켜 여성 벤처 발전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여성의 섬세함, 벤처에 안성맞춤 = 여성벤처협회장으로서 여성 벤처가 적은 현실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대표는 "여성이 남성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의외의 답을 내놨다. 여성은 막상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서도 사업 실천에 옮기는 데 고민을 하는 반면, 남성은 일단 저지르고 본다는 것이다. 벤처는 꼼꼼한 사업 분석도 중요하지만 초기에는 적극적인 도전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남성은 아이템이 좋다고 생각되면 회사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실패하는 경우도 많지만 일단 도전하는 이들 자체가 많다 보니 성공하는 이들도 많다. 반면 여성은 아이템이 좋으면서도 여러 가지 각도로 고민하고 분석하다가 시기를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나라는 올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며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이 대표의 기대감도 남다르다. 그녀는 최근 대통령 방미단의 일원으로 참석, 세계 시장에서 급부상한 우리나라의 위상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여성 대통령 시대인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여성 벤처 발전을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있다. 벤처에 대한 해결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여성 CEO만의 강점은 '섬세함'과 '따스함'이다. 이들 두 가지는 여성이라서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감성이다. 벤처에 섬세함과 따스함을 덧붙이면 여성 벤처만의 특징을 구현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벤처에 뛰어드는 건 결사반대다. 최근 벤처 붐이 일며 정부에서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자 이를 노린 가짜 벤처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녀는 "순수한 고민 없이 정책지원금을 악용하려는 식의 창업은 벤처 정신이 아니다"며 "이 길에 내 인생을 한 번 걸어보겠다는 각오로 도전한다면 언제라도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 대표는 기업공개(IPO)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 상장사 중 여성 CEO는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도전이 현 상황을 바꾸는 밑절미가 될 수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했다. "벤처에서 시작해 코스닥, 코스피를 거치며 하나의 롤 모델로 자리잡고 싶다. 후배 여성 CEO들이 참고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게 내 목표다." 이은정 대표는… ▲1964년 서울 출생 ▲1988 홍익대 경영학과 졸업 ▲1997 한국맥널티 대표이사 ▲2010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위원회 위원 ▲2012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2013 한국여성벤처협회장 ▲2013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 자문위원※한국맥널티는 어떤 기업?
지난 1997년 설립된 한국맥널티는 국내 원두커피 시장 1위(시장 점유율은 23.9%) 기업으로 원두커피 유통뿐 아니라 소비자용 상품 판매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대표 판매 상품은 휴대용 티백형 제품인'삼각형 티백', 컵 윗부분에 다리 형태의 종이 지지대를 걸쳐놓고 물을 따르는 형식인 '드립 백', 캡슐커피처럼 작은 용기에 진한 농축액이 들어 있어 뜨거운 물에 넣는 순간 원두커피가 되는 '포션커피' 등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03년 설립된 사내연구소에서 신제품 개발을 맡고 있는데 매년 매출액 대비 13%가량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다. 현재 냉수용 원두커피 제조방법, 유산 생성 바실러스 함유 커피믹스 등 500여종의 특허기술 및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누적 커피 생산규모는 5만721백(1백=60kg)에 달한다. 스틱형 믹스커피는 2004년부터 미국, 중국 등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커피업계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 ISO9001 인증 등을 받았다. 2006년에는 제약공장을 인수, 제약업으로 사업을 넓혔다. 개량 신약,고혈압,비만,골다공증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52억원, 영업이익은 11억원이다.이승종 기자 hanaru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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