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오규원의 '개봉동과 장미'

개봉동 입구의 길은/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장미는/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장미는 이곳 주인이 아니어서/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그대와 나는/사촌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말해 보라/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오규원의 '개봉동과 장미' ■ 길과 장미의 입장이 전도되면서, 풍경이 낯설어진다. 장미가 길을 휘게 하고 장미가 길을 데리고 가다가 굽어진 어딘가에서 길에서 빠져나온다. 길은 저 혼자 저만치 가고 장미는 길 밖에서 가지를 흔들고 서 있다. 우리는 장미를 너무 쉽게 생각해 온 혐의가 있다. 장미 또한 시간을 살고 있지만, 때론 제 몸에서 시간을 풀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시간 안에서 피고 시들지만, 장미는 인간의 시간을 함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시간 밖의 꽃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봉동을 알고 있지만 개봉동의 다른 주민인 장미와 간담회를 할 수는 없다. 장미는 집주인이 아니지만, 손님인 우리가 장미처럼 그 집 안에 기거할 수는 없다. 개봉동에 사는 장미 주민의 재발견, 장미들이 살고 걷고 생각하다 돌아가는 개봉동으로의 초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별로 아는 것이 없는,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던 장미를 위해, 오규원은 서먹하고 불편하게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인간이 외계인인가. 장미가 외계인인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는 시.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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