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제민주화 2제](상)뜨거운 감자로 불거진 '분리발주'..왜?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강력 추진하는 가운데 건설산업에서는 분리발주 시행과 하도급 제도개선이 화두로 떠올랐다. 건축물 등을 시공할 때 콘크리트와 기계설비 등의 사업자를 별도로 선정하도록 변경하자는 것이 분리발주의 개념이다. 하도급과 관련해서는 대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사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는 극명하게 엇갈린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 건설사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는 반면 전문업종을 영위하는 쪽에서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취지는 좋지만 발주자-원도급-하도급 등으로 이뤄지는 건설산업의 중층적 생산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 정책을 강행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 논란이 커질 태세다. 이에 분리발주와 하도급 제도 개선책 등의 문제와 대안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인천 대정초등학교 전경. 이 학교 대강당이 2010년 1월 준공 보름만에 화재 사고가 나 모두 타버렸으나 발주자인 인천교육청은 공사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다. 이 강당의 공사는 소방설비 등 5개 공정을 분리발주했다.
[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 2010년 1월 인천 대정초등학교 대강당이 준공 보름만에 불이 나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교육청은 8억8100만원을 들여 강당을 다시 지은 후 복구비용 전액을 소방설비를 담당한 S전문건설사에 구상권을 청구했다. 국과수 수사상 소방설비와 관련된 배선 결함으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S사가 손해배상을 거부하면서 결국 법정분쟁으로 갔고 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에만 1년의 시간을 끌었고 결국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다. 시공 분리발주가 발주자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일괄발주의 경우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업체가 공사 전체의 분쟁을 조율하지만, 분리발주의 경우 하자보수 책임을 가리기 힘들어 사고나 하자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정초등학교 대강당 공사는 건축과 전기, 소방, 정보통신, 기계 등의 분야를 전부 따로 발주한 케이스다. 시공 분리발주 문제가 건설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전문건설협회를 방문해 분리발주 법제화를 공식화 하면서 논란이 본격화되고 있다. 건설업계의 손톱 밑 가시인 불공정 하도급 문제를 근절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인데, 원도급 업자들은 하자보수 책임 문제 등을 거론하며 "건설업계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자체와 공기업 등 발주기관도 마찬가지다. 반면 하청업체들은 전문건설사들이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맞서고 있다.◆분리발주, 왜 추진되나?=박근혜 정부가 시공 분리발주를 추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불공정 하도급 관계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발주처-원청업체-하청업체'의 복층 구조로 된 공사계약 관계를 원청업체를 빼고 '발주처-하청업체'의 단층구조로 바꿔 하청업체의 판로를 넓혀주자는 구상이다. 새누리당 대선공약 사항으로 검토되다, 인수위 중소기업 규제애로 대책, 이른바'손톱 및 가시 대책'에서 '중소 전문건설업체들이 공공공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공사 분리발주 원칙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방안이 포함되면서 시공 분리발주가 공식적으로 명시됐다. 이후 국정과제에 분리발주가 포함됐다. 원청업체건 하청업체건 복층 하청구조에서 오는 불공정 하도급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을 하는 편이다. 특히 하청업체인 전문건설사들은 분리발주 법제화 추진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한 전문건설업체 임원은 "최저가 낙찰제로 원청업체가 70%에 낙찰을 받아 다시 70%로 하도급을 준다면 결국 하청업체들은 원래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49%에 공사를 해주는 셈"이라며 "이대로면 전문건설업체들이 모두 고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만8000여개 회원사 중 2503개 업체가 폐업했고, 129개 업체가 당좌거래 정지, 즉 부도를 당했다. 당좌거래 가능한 대형업체들이 전체의 1%가 안되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있는 업체 대부분이 부도 상태란 얘기다. ◆"잘못하면 새로운 손톱밑 가시"= 종합건설업체들도 이같은 불공정 하도급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분리발주가 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종합건설업체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일단 종합건설업체는 대기업, 전문건설업체는 중소기업이란 정부의 이분법적 접근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한 종합건설사 관계자는 "10대 건설사를 제외하면 원청업체 대부분이 중소건설사"라며 "전문건설업체 지원을 중소건설사에 대한 지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업계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실제 종합건설사 모임인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1만2000여개 회원사 중 종업원 300명 이상의 대기업은 116개사로 1%가 채 안된다. 법제화가 공론화되면서 협회는 분리발주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협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분리발주 법제화는 일부 업계(전문건설업계)의 업역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일방적 건의를 대선 공약 선정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없이 채택한 결과"라며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협회는 분리발주가 도입될 경우 ▲발주업무 폭증 ▲공기증가에 따른 예산 낭비 ▲공정간섭으로 시공 품질 저하 ▲하자보수 지연 ▲해외 수주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점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이 분리발주제 도입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책의 수혜보다 부작용이 크다"며 "시범공사를 선정해 분리발주를 도입해 시공을 해보고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친 뒤 공론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최근 기획재정부와 공공발주처간의 실무 간담회에서도 대체로 분리발주 도입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발주 비용이 8%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김창익 기자 window@<ⓒ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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