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국회 낮잠자는사이 사경 헤매는 증권사 속출
[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여의도 증권가가 위기다. 거래대금이 6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웬만한 증권사는 손익분기점(BEP)을 맞추기도 어려워졌다. 2007~2008년 대세상승기 때 앞다퉈 출범한 신생 증권사는 물론이고, 중소형사들마저 적자를 면하기 어려워졌다. 사업구조가 비교적 다변화된 대형사들마저 수익이 급감하며 적자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위기의 증권가, 자본잠식도 속출=애플투자증권이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자진 영업 폐지안을 결의했다. 다음달 12일 임시주주총회를 거치면 설립한지 4년 10개월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지난해 말 기준 애플투자증권은 자본금 151억원에 자기자본 101억원으로 일부 자본잠식 상태였다. 설립 후 계속된 적자의 결과였다.문제는 이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증권사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플투자증권은 포함해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증권사는 9곳이나 된다. 이중 코리아에셋증권(전 코리아RB증권)과 비오에스증권의 자본잠식율은 50%를 넘어 애플투자증권(33.21%)보다 자본잠식 상태가 심했다.이들보다 사정이 낫다지만 중대형사들의 상황도 별반 좋지 않다. 대형사들조차 순이익이 전분기보다 70~90%씩 급감했을 정도다. 일부 대형사는 적자를 보기도 했다. 지난해 3분기(2012년 10~12월) 증권사의 영업이익은 68.2%, 순이익은 76% 급감했다. 적자를 기록한 증권사는 전체 61개 증권사 중 24개사(39.3%)였다. 3분기까지 누적 실적으로도 적자인 증권사도 19개사(31%)나 된다. 문제는 올 들어 시장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2월 이후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3조원대로 주저앉았다. 코스닥 시장을 합쳐도 5조원대 중반이다. 최악이라는 지난해 3분기 증시의 일 평균 거래대금은 6조4000억원대였다. ◆정치권에 발목잡힌 금융투자산업=업계에서는 상황이 이런데도 정책이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표류다. 금융투자산업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몇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놀란 정치권이 투자자 보호를 빌미로 빗장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업계 관계자들은 정치권이 금융투자산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아쉬워 한다. 대형증권사 A사 B사장은 "금융자산 700조원 중 초과수익을 1%만 더 내면 7조원의 이익이 생기는 게 금융투자업"이라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동차 수백만대 수출과 맞먹는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이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이 금융투자업을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제조업 등 기존 산업에 자금공급을 하는 기능에 국한해 보려는 것 같다"며 "금융투자업을 이렇게만 볼 경우 1990년대 일본식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양질의 일지라 창출과 경제민주화=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민주화란 측면에서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통과가 절실하다. 법 통과로 대형 투자은행(IB)이 활성화되면 대형사는 헤지펀드와 프라임브로커리지 등으로 적극 진출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길이 열린다. 또 다른 대형사 C사의 D 사장은 "국내에 60여 개나 되는 금융투자회사들이 과당경쟁중이라 수익성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인데 아예 나가지를 못하게 막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규모 증자 등으로 싸울 채비를 마쳤는데 정치권이 아직 준비가 안됐으니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형사들조차 좁은 국내시장에서 브로커리지(위탁매매)시장에서 좀체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레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형사들은 더욱 버티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대형사 견제가 오히려 중소형사들의 목줄을 더 옥죄고 있는 셈이다. 이인용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대형사들이 확충한 자본을 가지고 나가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해 새 먹거리를 찾아야 국내에 남은 중소형사들이 니치 마켓을 공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며 "국내에서 대형사라고 해도 아시아권에서도 그리 큰 규모가 아니란 점을 감안할 때 대형사의 신시장 진출을 막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전필수 기자 philsu@<ⓒ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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