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氣잡기' 여야…시간은 가는데 빅딜 지혜 실종

여야, 뉴미디어 전선서 버티기 소모전…국정공백 계속장기전 감수 밀어붙이기 vs 국정원女 국정조사 수용…朴의 선택 어디로[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예고된 재앙이다. 출범 사흘째를 맞은 박근혜 정부가 출발부터 파행을 빚고 있다. 정부조직법개편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계속되면서다. 첫 국무회의조차 무산된 데다 신임 장관의 인사청문회까지 미뤄지면서 국정현안이 표류하고 있다.더욱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이 장기화될 조짐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라며 청와대만을 바라보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란 각오로 배수진을 쳤다. 여야가 지루한 싸움을 벌이며 2월 처리는 물 건너갔고,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내달 5일도 넘길 공산이 크다.◆ '텅빈 내각'…행정 공백 장기화국회는 26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정 총리는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새 정부 첫 총리로서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정 총리는 28일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각료들과 회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박근혜 정부가 밝힌 국정 과제들은 줄줄이 지연됐다.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로드맵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새 정부에서 가장 공을 들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법적 근거가 없는 유령부서로 전락했다. 업무 이전을 준비한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국회만 바라보는 상황이다.박 대통령이 '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겠다며 신설한 청와대 국가안보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을 뿐 안보수장으로서 공식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상태다. 국가안보실 실무라인에 대한 인선 권한도 없다. 당장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외교 안보라인은 가동을 멈췄다.◆ 무책임한 野 무기력한 與, 명분과 실리 사이 '치킨게임'정부조직법개편안은 국회에서 한 달 가까이 묶여있는 상태다. 지난달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만든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로 넘어온 이후 여야는 28일간 지루한 힘겨루기만 하다 정부 출범 시한까지 넘겨버렸다. 여야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까지 두 번 가까이 협상 타결에 근접했었다. 24일 막판 협상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역케이블방송(SO)과 인터넷방송(IPTV) 등 뉴미디어 분야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를 놓고 합의에 실패했다. 해당 업무는 방통위 조직으로 뉴미디어정책과·융합정책과 등 2개 과(課)에 해당하는 업무다. 여야가 직원 10여명 규모의 작은 업무 분야를 놓고 국정 전반의 발목을 잡은 꼴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새 정부 초반의 정국주도권을 둘러싼 여야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했다. 민주통합당은 정권 초반 새 정부의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 견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란 불안에 사로잡혀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조직개편안에 야당의 의견을 반영한 만큼 이번에도 체면을 세워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도 이 문제로 갈등을 빚던 여야는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존치 등의 빅딜을 통해 정부조직개편안을 처리했다.여당인 새누리당은 "방송통신 융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국회는 국민의 지지를 통해 출범한 새 정부의 국정을 지원해야만 한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논리다. 당내에서조차 "친박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취임 며칠 전 이한구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처리해달라"는 주문을 하자 부랴부랴 타협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원칙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과 이 원내대표의 합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선진화법 적용에 사라진 출구…朴의 선택은?과거의 경우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정부조직법이 처리가 안 되는 상황이면 여당은 직권상정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럴 수도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등으로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과반을 갓 넘긴 새누리당 의석(153석)으로는 꿈도 못 꾼다.실마리를 풀 열쇠는 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박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대응카드는 두 가지다. 강경책은 국정의 장기공백을 감수하고 여론으로 야당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경우 야당이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입장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몇 달간 공백이 지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유화책은 야당이 요구하는 MBC 청문회나 국정원 여직원 사건 국정조사 등을 수용해 빅딜을 통해 처리하는 것이다.박 대통령은 강경책과 유화책 중에서 직접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정국의 향배는 박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이민우 기자 mw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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