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이명박 대통령이 29일 결국 설 특별 사면을 단행했다. 차기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신구 정권간 갈등이 본격화됨은 물론 이 대통령은 '셀프사면'ㆍ'권력 남용'이라는 비난을 안게 돼 퇴임 후까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설 특사를 강행한 것은 우선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명분을 세웠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연말부터 종교계, 정치권, 경제계 등 각계 각층에서 사면을 요구해왔고, 대통령의 권한을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히 행사했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과 정치권의 반대한다고 해서 이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접을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지난 연말부터 법무부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한 후 지난 25일 사면심사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아 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를 밟았고 엄밀히 대상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설 특사안을 의결한 국무회의 직후 국무위원들에게 "투명하고 법과 원칙에 맞는 사면을 위해 처음으로 민간 위원이 다수 포함된 사면 심사위원회를 통하는 등 진일보한 절차를 거쳤다"며 "우리 정부에서의 사면은 민생 사면을 위주로 하고 정치 사면은 당초 약속대로 절제해왔으며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적다"고 강조했다.청와대 측은 반발이 심한 이번 설 특사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 모양새에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하다. 이 대통령의 친인척은 배제했고, 임기중 발생한 비리 사건도 제외했다. 이에 따라 저축 은행, 민간인 사찰 등의 연루자는 사면 명단에서 빠졌다. 또 '중소기업 대통령'을 내건 박 당선인을 의식한 듯 경제 5단체의 추천 대상자중 중소기업ㆍ중견기업인들이 주로 사면대상에 올랐다. 야당ㆍ시민단체 등에서 줄곧 요구해 온 용산사태 관련자들도 사면에 포함해 사회갈등 해소라는 의미도 담았다. 그러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이같은 모양새 갖추기는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셀프 사면'이라는 비난을 감수한 것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경우 자신의 최측근들에 대한 사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로 분석된다. 박 당선인이 평소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이 대통령은 측근 중에서도 유독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천 회장, 최 전 위원장, 박 전 의장 등을 자신의 임기 내에 사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일각에선 "차기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현 정부에서 털고 갈 것은 털고 가겠다'는 생각이 강하며, 이번 특사 단행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연초 전기요금 인상과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택시법' 거부권 행사, 2차례나 실패한 '나로호' 재발사 시도 등을 통해 차기 정부의 부담을 없애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번 특사도 같은 차원에서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역대 정부에서 매번 임기말 특사가 있었다는 점도 청와대가 이번 특사를 강행한 이유로 꼽힌다. 청와대 내부에서 특사 반대 여론이 들끓자 "남들 다 했는데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말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특별사면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2월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특별사면했다.박 당선인의 강한 반대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특사를 강행한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청와대 측은 특사를 둘러 싼 논란이 신-구 정권간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면서도 결국 '정면 충돌'의 길을 선택했다. 특히 반대 여론이 거셌던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특사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당분간 국민들의 비판 여론은 물론 새누리당ㆍ박 당선인 등 '같은 편'으로부터도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됐다.일각에선 이를 두고 '사전 교감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이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사면 반대 입장을 피력하긴 했지만, 모두 대변인을 통해 원칙론만 강조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에선 최근 인수위의 입장 표명은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고 청와대가 '원칙과 절차'에 입각해 사면을 단행했다는데, '차기 대통령'에 불과한 박 당선인으로선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을 내놓기 위한 모양새 갖추기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와 박 당선인 측은 특사안이 의결된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전후해 아무런 행동이나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면으로 지난해 12월25일 박 당선인의 '청와대 낙하산 금지' 발언 이후 금이 가기 시작한 청와대-박 당선인측의 갈등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또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부패ㆍ비리로 처벌된 측근을 사면한 대통령"(셀프사면)이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4대강 사업, BBK 의혹, 민간인사찰 등 안 그래도 퇴임 후까지 이 대통령을 괴롭힐 일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김봉수 기자 bs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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