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이 살았다.” 영화 <26년>의 계엄군과 유족들은 지난 26년의 세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광주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본 남편은 매일 술에 의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어이 스스로를 불태우지 않고는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거 계엄군이었던 남자는 그 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차라리 죽을힘을 다해 ‘그 사람’의 경호를 맡으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앞서 언급한 대사는 故 김근태 전 고문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22일 동안 고문을 받았던 김종태(박원상)의 모습에도 적용된다. 김종태는 지금 이 결정이 언젠가 자신에게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돌아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존경하는 운동권 선배들을 배후세력으로 지목한다. 그렇지 않으면 칠성판에 누워 기절할 때까지 전기고문을 받거나,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의 벨트에 목이 묶인 채 개처럼 끌려 다니며 구둣발로 비빈 밥을 먹어야 했으니까.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H3><26년>, <남영동 1985>, < MB의 추억 >, 스크린 속 남의 일이 아니다</H3>
[26년]은 그 날 이후 남은 유족들의 고통과 분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한 <남영동 1985>과 <26년>은 1980년대 고문기술자와 계엄군 뒤에 숨은 독재자의 폭력성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보여준다. 일명 ‘남영동 VIP룸’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22일간의 고문자체에 집중한 <남영동 1985>가 과거의 폭력을 생생하게 재현한 영화라면, 1980년 5월 18일이 아니라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족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26년>은 그들의 고통과 분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단죄를) 하지 않아도 죽을 것 같고 해도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 ‘그 사람 단죄 계획’은 ‘그 사람’을 보호하려는 공권력 앞에서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마지막 총성이 유족 심미진(한혜진)과 ‘그 사람’ 중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5.18 26주기 기사가 실린 신문을 깔고 뻔뻔하게 발톱을 깎는 ‘그 사람’을 단죄한들, 그들의 고통은 잠시 가라앉을 뿐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가족들의 비명과 피로 일궈낸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유족들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감히 <남영동 1985>의 김종태와 <26년>의 유족에 비할 순 없겠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도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느낀 감정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 MB의 추억 >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전후를 교차 편집하는 방식을 통해,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등 돌리는 시대를 냉정하게 직시한다. 후보 시절 “가난의 대를 끊기 위해 나라가 보조해서 다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고 유세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외치는 대학생들을 연행했고, “여러분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던 그는 그 사랑을 거대한 살수차와 ‘명박산성’으로 표현했다. < MB의 추억 >이 되돌아 본 지난 5년은 “삽질의 추억”이나 다름없다. 1980년, 1985년, 그리고 2012년. 제각기 다른 시대를 이야기하는 세 작품이 연달아 개봉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난 4년 간 투자와 캐스팅에 난항을 겪으면서 제작이 수차례 무산됐다가 거대한 개인 투자자가 아닌 만 오천 명에 달하는 예비 관객들의 힘으로 힘겹게 세상에 나온 <26년>은 이것이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H3>울부짖고만 있을 것인가, 투표할 것인가</H3>
[ MB의 추억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뽑은 지도자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고통도 가난처럼 대물림되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MB의 추억 >에서 지난 선거를 회상하며 흘러나온 이명박 대통령 시점 내레이션이 작은 힌트가 되어준다. “정치는 이미지다. 국민들은 정작 정책을 따지지 않는다. 나는 이미지에 최선을 다했다”, “지난 5년의 역사는 나를 권좌에 앉힌 그대들이 써내려간 것”이라는 내레이션은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를 맹신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뽑은 지도자는 우리의 세상이 아닌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고통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것은 표가 아니라 표를 던질 곳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다. 후보들이 스스로 포장한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고, 나쁜 후보를 걸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체에 남은 후보들을 청문회 하듯 꼼꼼하게 검증하고 감시하는 과정 말이다. 그것이 곧 정치적 관심이며, 그것들이 모인 표심은 미래의 지도자가 두려워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다.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26년>과 <남영동 1985> 감독의 바람은 특정 개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 그 분노와 서러움이 더 이상 현재진행형이 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5년 후, 우리는 <26년>의 그들처럼 개 같이 살았다고 울부짖을 것인가, 아니면 사람답게 살았다고 회상할 것인가. 권좌에 앉은 지도자가 써내려 갈 5년의 역사를 결정하는 시간, 이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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