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정재훈사진기자
이정훈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새롭게 부여된 동기도 빼놓을 수 없다. 또 한 번의 FA 권리 획득이다. 이정훈은 “마흔 살까지 뛰는 것이 목표”라며 “효율적인 몸 관리로 다시 한 번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어 “후반기 선수단의 내리막을 지켜보며 너무 아쉬웠다. 넥센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다음은 이정훈과의 일문일답 아시아경제(이하 아경) 넥센과 긴 줄다리기 없이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정훈(이하 이) 애초 넥센에 남을 생각이었다. 구단에서 나를 잡겠다는 감이 있었다. 먼저 계약을 제안해오기도 했고. 대충 따져보니 다른 구단과 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옵션이 하나 더 포함된 계약서를 확인하고 주저 없이 도장을 찍었다. 아경 누구와 협상을 논의했나. 이 노건 운영이사다. 처음 제시받은 조건은 솔직히 기대 밑이었다. 하지만 그간 잔류한 사례들을 생각해보니 대우가 비슷한 것 같더라. 옵션을 하나 더 요구하고 이틀 뒤 계약을 매듭지었다. 사실 내겐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아경 그게 무엇인가.이 보상선수다. 나와 계약하는 넥센 이외의 구단은 보호선수 20명 가운데 보상선수를 한 명 내줘야 한다. 넥센과의 우선협상이 틀어졌어도 다른 구단들의 접근이 어려웠을 것이란 뜻이다. FA 자격을 얻었지만 이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보상선수 제도는 분명 개정이 필요하다. 후배들만큼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FA 계약에 임했으면 좋겠다. 아경 정규시즌을 치르며 FA를 의식했나. 이 딱히 그렇진 않았다. 다만 규정이닝을 채우는 게 걱정됐다. 시즌 초만 해도 괜찮았는데 이후 두 차례나 2군으로 강등됐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쉽다. 2군을 다녀온 뒤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기울여야 했다.이정훈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아경 그래도 많은 대화가 선수단 사이 응집력을 높이지 않을까. 이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후배를 백 번 앉혀놓고 가르쳐도 절실하지 않으면 이해시키기 힘들다.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다면 먼저 찾아와 물어볼 줄 알아야한단 말이다. 그런 후배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을 선배는 한 명도 없다. 내가 알려주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가령 투수 A가 타자 B에게 약하다고 치자.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B를 상대로 강한 투수 C를 찾아가면 된다. 끊임없이 요리법을 묻는다면 난관을 극복할 열쇠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처음 프로에 발을 내딛은 신인들에게 이 같은 자세는 필수다. 아경 당신은 누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나. 이 롯데 시절 룸메이트였던 손민한이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다. 이전까지 나는 타자를 힘으로 밀어붙였었다. 투구 유형을 바꿀 수 있었던 건 많은 조언 덕이다. 힘을 덜 들이고 효과적으로 투구할 수 있어 이번 FA 계약도 맺을 수 있었다고 본다. 아경 이번 FA 시장은 여느 때보다 과열됐다. 더 높은 조건을 기대할만 했을 텐데. 이 적당했다고 생각한다. 계약기간이 조금 아쉽지만.아경 어느 정도를 생각했나.이 3년이다. 2년에서 매듭을 지었지만 괜찮다. 2년 뒤에도 잘할 자신이 있다. 더 좋은 성적으로 한 번 더 FA 계약을 맺으면 그만이다.아경 넥센에 남게 됐는데 연고지인 서울로 가족들을 데려올 생각은 없나.이 모르겠다. 부산에 있는 집을 매매로 내놓았는데 잘 나가지 않는다. 김포에 전셋집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최근 전세보증금 사기가 극성이라 골치가 아프다.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다. 목동구장 인근은 거의 최고 수준이다. 아파트엔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번에 부산에 내려가면 이사 여부를 결정지을 생각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다. 겨울방학 내 이사를 하지 못하면 또 다시 ‘기러기 아빠’로 지내야 한다.이정훈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아경 자격증 취득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 먹고 살려면 필요하니까(웃음). 최근에는 대학교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 사회체육학과에 들어가 몇 급이든 지도자자격증을 따고 싶다. 아경 어떤 선수를 키우고 싶은가.이 초등학생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체육 교육 시스템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어린 친구들이 야구를 쉽게 접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은 쉽게 발견되나 야구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야구부가 아니면 학교 밖 클럽에서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방과 후 교육 등을 활성화시켜 좋은 야구선수를 발굴하고 싶다. 아들 녀석은 축구선수가 되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지만(웃음). 아경 어떻게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됐나. 이 하단초등학교 3학년 때 공 던지기를 잘해 야구부에 뽑혔다. 처음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그만두겠다며 나왔고 그때마다 감독에게 혼이 났다. 장난을 치다 팔에 부상을 입어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부모님의 고생이 많으셨다(웃음). 아경 운동 재능이 남달랐나 보다. 이 중학교 때부터 보디빌딩을 했다. 지역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의 실력은 됐던 것 같다. 동래고 시절 야구부가 남해 전지훈련을 떠나 부산 지역 최고 대회에 나가지 못했는데 그때 출전했다면 지금 다른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당시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 얼마 전 재어보니 허리 사이즈가 34인치더라. 나이를 먹으며 많이 망가졌다. 당시 모습을 사진에라도 담아뒀어야 했는데. 아경 그 정도 운동재능이면 프로에서도 돋보였을 것 같은데.이 그렇지 않더라. 육상부도 겪었던 몸인데 빠른 스피드에 거의 압도당했다. 한 가지 자신 있는 종목은 있었다. 장거리 달리기다. 체력만큼은 뒤지지 않아 당시 김용희 감독의 눈에 띄려고 열심히 뛰었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다(웃음).이종길 기자 leemean@정재훈 사진기자 roz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