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이정훈 'FA? 아직 끝나지 않았다'(인터뷰①)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화두는 넥센이었다. 외야수 이택근을 총 50억 원에 영입하며 프로야구 판을 뒤흔들었다. 최근 막을 내린 FA 시장은 달랐다. 이장석 구단주는 일찌감치 “(우리 선수단의) 약점을 보완할 자원이 보이지 않는다”며 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새로운 영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내부 단속에까지 소홀했던 건 아니다. FA를 신청한 베테랑과 총 5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불펜의 든든한 맏형, 이정훈이다. 이정훈은 지난 13일 넥센 구단과 2년간 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원, 옵션 1억 원 등 총 5억 원에 FA 계약을 맺었다. 내년 36세가 되는 이정훈은 프랜차이즈 스타와 거리가 멀다. 프로생활의 대부분을 롯데에서 보냈다. 2010년 고원준과 트레이드돼 넥센과 인연을 맺었다. 궁합은 좋은 편이다. 중간계투진의 핵심으로 거듭나며 프로생활의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해 44경기(52.1이닝)에서 3승 3패 1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한 이정훈은 올 시즌도 40경기(44.1이닝)에서 4승 4패 1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4.67를 남기며 제 몫을 해냈다. 성적은 더 향상될 수 있다. 이정훈은 지난 2년 동안 ‘기러기아빠’였다. 아내와 아들을 부산에 남겨두고 홀로 서울에 상경했다. 마음고생은 올해 덜어낼 수 있다. FA 계약을 계기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컨디션 회복도 순조롭다. 이정훈은 시즌 막판 잃어버렸던 투구 폼을 되찾았다. 최근 하체를 단련하며 구속 증진에 집중하고 있다. 구속이 2km 이상 오를 경우 넥센의 뒷문은 훨씬 견고해질 수 있다. 수준급의 포크볼이 보다 효과적으로 먹힐 수 있는 까닭이다.

이정훈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새롭게 부여된 동기도 빼놓을 수 없다. 또 한 번의 FA 권리 획득이다. 이정훈은 “마흔 살까지 뛰는 것이 목표”라며 “효율적인 몸 관리로 다시 한 번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어 “후반기 선수단의 내리막을 지켜보며 너무 아쉬웠다. 넥센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다음은 이정훈과의 일문일답 아시아경제(이하 아경) 넥센과 긴 줄다리기 없이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정훈(이하 이) 애초 넥센에 남을 생각이었다. 구단에서 나를 잡겠다는 감이 있었다. 먼저 계약을 제안해오기도 했고. 대충 따져보니 다른 구단과 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옵션이 하나 더 포함된 계약서를 확인하고 주저 없이 도장을 찍었다. 아경 누구와 협상을 논의했나. 이 노건 운영이사다. 처음 제시받은 조건은 솔직히 기대 밑이었다. 하지만 그간 잔류한 사례들을 생각해보니 대우가 비슷한 것 같더라. 옵션을 하나 더 요구하고 이틀 뒤 계약을 매듭지었다. 사실 내겐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아경 그게 무엇인가.이 보상선수다. 나와 계약하는 넥센 이외의 구단은 보호선수 20명 가운데 보상선수를 한 명 내줘야 한다. 넥센과의 우선협상이 틀어졌어도 다른 구단들의 접근이 어려웠을 것이란 뜻이다. FA 자격을 얻었지만 이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보상선수 제도는 분명 개정이 필요하다. 후배들만큼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FA 계약에 임했으면 좋겠다. 아경 정규시즌을 치르며 FA를 의식했나. 이 딱히 그렇진 않았다. 다만 규정이닝을 채우는 게 걱정됐다. 시즌 초만 해도 괜찮았는데 이후 두 차례나 2군으로 강등됐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쉽다. 2군을 다녀온 뒤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기울여야 했다.
아경 그게 올 시즌 가장 아쉬운 점인가. 이 무엇보다 선수단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아니겠나. ‘가을야구’를 했다면 FA 협상에서 조금 더 높은 조건을 제시받았을 것이다. FA가 아니더라도 야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팀 성적이다. 롯데에 있을 때도 그랬다. 선수단 성적이 좋아야 선수들도 야구를 재밌게 할 수 있다. 아경 넥센 잔류를 가장 축하해준 선수가 있다면.이 모든 선수들이 반겨줬다. 롯데에 새 둥지를 튼 정민태 투수코치까지도 전화통화로 격려해줬다. 아경 정민태 코치의 롯데행이 아쉬울 것 같은데. 이 어찌됐든 계속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된 건 축하드릴 일이다. 잘 됐다고 생각한다. 롯데 투수진은 관리보다 육성이 시급하다. 고생을 많이 하실 것 같다. 아경 박흥식 코치가 맡은 타선도 다르지 않다. 최근 간판급 선수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이 유망주들 가운데 한 명 정도는 기량이 올라오지 않겠나. 강민호 같은 좋은 타자들도 있고. 다른 구단 사정을 생각할 때는 아니지만(웃음). 아경 롯데 출신인데다 집도 부산이라 롯데 선수들을 자주 만날 것 같다. 이 선수들보단 트레이너와 자주 연락을 나눈다. 아마 내 휴대폰 번호를 아는 선수가 거의 없을 거다. 바뀐 번호를 따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부산에 내려가면 우연히 자주 마주친다. 아경 넥센에서도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다. 이 굳이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택근 등 선수단 내 사기를 끌어올리는 친구들이 많다. 넥센은 젊은 팀이다. 나 같은 최고참은 가끔씩 후배들에게 아쉬운 부분만 지적하면 된다. 그게 좋은 팀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때도 그랬다.

이정훈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아경 그래도 많은 대화가 선수단 사이 응집력을 높이지 않을까. 이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후배를 백 번 앉혀놓고 가르쳐도 절실하지 않으면 이해시키기 힘들다.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다면 먼저 찾아와 물어볼 줄 알아야한단 말이다. 그런 후배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을 선배는 한 명도 없다. 내가 알려주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가령 투수 A가 타자 B에게 약하다고 치자.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B를 상대로 강한 투수 C를 찾아가면 된다. 끊임없이 요리법을 묻는다면 난관을 극복할 열쇠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처음 프로에 발을 내딛은 신인들에게 이 같은 자세는 필수다. 아경 당신은 누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나. 이 롯데 시절 룸메이트였던 손민한이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다. 이전까지 나는 타자를 힘으로 밀어붙였었다. 투구 유형을 바꿀 수 있었던 건 많은 조언 덕이다. 힘을 덜 들이고 효과적으로 투구할 수 있어 이번 FA 계약도 맺을 수 있었다고 본다. 아경 이번 FA 시장은 여느 때보다 과열됐다. 더 높은 조건을 기대할만 했을 텐데. 이 적당했다고 생각한다. 계약기간이 조금 아쉽지만.아경 어느 정도를 생각했나.이 3년이다. 2년에서 매듭을 지었지만 괜찮다. 2년 뒤에도 잘할 자신이 있다. 더 좋은 성적으로 한 번 더 FA 계약을 맺으면 그만이다.아경 넥센에 남게 됐는데 연고지인 서울로 가족들을 데려올 생각은 없나.이 모르겠다. 부산에 있는 집을 매매로 내놓았는데 잘 나가지 않는다. 김포에 전셋집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최근 전세보증금 사기가 극성이라 골치가 아프다.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다. 목동구장 인근은 거의 최고 수준이다. 아파트엔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번에 부산에 내려가면 이사 여부를 결정지을 생각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다. 겨울방학 내 이사를 하지 못하면 또 다시 ‘기러기 아빠’로 지내야 한다.
아경 넥센으로 이적했을 당시 서울에 터를 잡을 생각은 없었나.이 아내가 부산을 떠나기 싫어한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부산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다. 인심 좋고 먹을거리도 풍족하다. 서울은 사기꾼이 너무 많다. 집값도 거품이 심해 여유로운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치과의사로 일하는 친구조차 먹고살기 힘들어할 정도다. 수강비로 80만 원을 내놓으라는 학원이 말이 되나. 서울에서 계획한 뜻을 이루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아경 홈경기를 마치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데.이 목동은 교통 체계가 복잡해 자동차를 이용하면 가까운 곳도 돌아가야 한다. 밤늦게 돌아가면 주차할 공간도 없다. 주차를 해놓아도 ‘차 좀 빼주세요’라는 전화로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그런 불편함 때문에 자꾸 자전거를 찾게 된다.아경 자전거 운전 실력이 상당하던데.이 초등학교 때부터 잘 탔던 것 같다. 산악자전거로 산을 오르내리며 내공이 쌓였다. 롯데 시절에는 부산 한 바퀴를 돈 적도 있다. 원래 운전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아경 다른 이동수단도 능숙하게 다루나.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미 경남중학교 시절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아버지가 몰던 자동차가 고장이 나 동아대학교에 있는 약수터를 혼자 다녀왔다. 자신감이 생겨 바로 면허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했다. 정확한 날짜도 기억한다. 10월 9일이다. 아경 나름 의미가 깊은 날인가.이 물론이다. 이륜차, 자동차 1종 보통 면허 등을 모두 같은 날 땄다. 특히 1종 보통은 이틀을 준비해서 통과했다. 1종 대형은 응시했다 한 차례 떨어졌다. 팔 수술로 깁스를 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러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90점을 넘지 못했는데 다시 한 번 도전할 생각이다. 1종 특수(트레일러) 면허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정훈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아경 자격증 취득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 먹고 살려면 필요하니까(웃음). 최근에는 대학교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 사회체육학과에 들어가 몇 급이든 지도자자격증을 따고 싶다. 아경 어떤 선수를 키우고 싶은가.이 초등학생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체육 교육 시스템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어린 친구들이 야구를 쉽게 접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은 쉽게 발견되나 야구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야구부가 아니면 학교 밖 클럽에서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방과 후 교육 등을 활성화시켜 좋은 야구선수를 발굴하고 싶다. 아들 녀석은 축구선수가 되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지만(웃음). 아경 어떻게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됐나. 이 하단초등학교 3학년 때 공 던지기를 잘해 야구부에 뽑혔다. 처음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그만두겠다며 나왔고 그때마다 감독에게 혼이 났다. 장난을 치다 팔에 부상을 입어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부모님의 고생이 많으셨다(웃음). 아경 운동 재능이 남달랐나 보다. 이 중학교 때부터 보디빌딩을 했다. 지역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의 실력은 됐던 것 같다. 동래고 시절 야구부가 남해 전지훈련을 떠나 부산 지역 최고 대회에 나가지 못했는데 그때 출전했다면 지금 다른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당시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 얼마 전 재어보니 허리 사이즈가 34인치더라. 나이를 먹으며 많이 망가졌다. 당시 모습을 사진에라도 담아뒀어야 했는데. 아경 그 정도 운동재능이면 프로에서도 돋보였을 것 같은데.이 그렇지 않더라. 육상부도 겪었던 몸인데 빠른 스피드에 거의 압도당했다. 한 가지 자신 있는 종목은 있었다. 장거리 달리기다. 체력만큼은 뒤지지 않아 당시 김용희 감독의 눈에 띄려고 열심히 뛰었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다(웃음).이종길 기자 leemean@정재훈 사진기자 roz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이종길 기자 leemean@골프팀 정재훈 사진기자 roz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