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영동 1985' 박원상 '그 날들, 기억도 하기 싫었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이 영화들 통해 나도 조금은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고문당하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은 라디오 소리였습니다. 고문 당하는 비명 소리를 덮어씌우기 위해, 감추기 위해,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인간에게 파괴가 감행되는 이 밤중에, 오늘, 저 시(詩)적이고자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김근태 / '남영동')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85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한 22일간의 끔찍한 고문의 기억을 활자로 새겨 기록으로 남겼다. 김근태 의원은 이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지난해 12월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수기 '남영동'에는 그날의 악몽이 생생하게 담겨있지만 고문의 경험이 없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다만 미루어 그 고통을 짐작해볼 뿐이다. 그러나 잔인했던 그 시대의 야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면? 영화 '남영동 1985'는 고문 장면으로만 거진 2시간을 채운다.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 장면으로 관객들을 고문하는 영화인 셈이다. 정지영 감독이 "그나마 완화시켜서 표현했다"는 데에도 매 장면 장면은 참혹하기만 하니 실제로는 어땠을지 상상조차 힘들다. 극중 김근태 의원 역을 맡은 배우 박원상을 지난 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문 장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한참 생각에 잠긴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처음에는 당시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기억이 안나지?' 의아할 정도였다. 질문을 받으면 다시 그 때의 기억을 찾아내는 식이었다. 곰곰이 그 까닭을 생각해보니 한 장면 한 장면씩 찍고 난 이후에는 아예 본능적으로 기억을 지웠던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고통과 기억에 짓눌려 다음 장면을 촬영할 수 없었을 테니까..."여러 명의 고문관들로 둘러쌓인 촬영 현장, 연기지만 외로움이 찾아왔다. 다른 배우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에도 마음이 시렸다. "나는 밥도 못 먹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깔깔대고 있구나" 싶어서 일부러 현장에서도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다. 김근태 의원의 수기에 '라디오 소리가 가장 싫었다'는 그 구절이 이해가 됐다. "실제 고문이 진행됐던 곳 근처에 남영역이 있다. 라디오 아나운서의 멘트, 전동차 소리, 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바깥 세상은 저렇게 잘도 돌아가는데 그 곳에서는 온갖 고문이 진행된다니, 참 모순이다 싶었다."
고문 장면 촬영은 쉽지 않았다. 고문대인 '칠성판'에 온몸이 묶인 채 누운 순간부터 막막함이 찾아왔다. 첫 촬영부터 물이 얼굴에 쏟아지자 바로 뿌리치고 일어나 엔지를 냈다. 머리로 생각했던 상상의 고통과 살로 맞부딪혀낸 현실의 고통은 한참이 달랐다. 나중에는 고문에도 적응돼 고춧가루를 탄 물고문 장면에서는 본인이 직접 "더 견딜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울 정도였지만 말이다. 벌거벗겨진 채 폭행을 당하고, 무릎을 꿇고, 고문을 받는 육체적 고통보다 '김근태'라는 큰 산을 연기하는 부담이 더 괴롭기도 했다.박원상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덜커덕 겁부터 났다고 한다. "내가 이 분을 맡아도 되나? 연극만 하고 애써 보이던 것을 못본 척 살았던 내가 이 분 역할을 해도 되나?" 이런 생각들이 발목을 잡았다. 감독에게 차라리 고문기술자인 '이두한(이근안)' 역할을 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김근태'라는 이름을 쓰지 말자는 그의 제안에 극 중 인물은 '김종태'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그렇게 '김종태'는 김근태 의원을 포함해 군부독재시절 희생당한 모든 이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재탄생했다. "김근태 의원은 '감당을 하는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다. 후반부에 김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고 감옥에 있는 고문기술자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김 의원은 끝내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끌어안고 간다. 근데 용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국가권력이 먼저 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 영화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같이 기억하자'는 의미다. 감독님도 요즘은 무대인사를 가면 관객들에게 '여러분들 힘드셨죠? 힘드시라고 만든 영화입니다'라고 인사한다."두 달여를 '김근태'로 살아낸 박원상은 영화 촬영을 마치고 김 의원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다. 한 손에는 김 의원이 생전 좋아했다던 참외와 막걸리가 들려 있었다. "묘지 입구에 선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더라. 김근태 의원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기억하는 인물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나도 주변을 좀 둘러보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진 화살'과 이 영화를 통해서 나도 조금은 성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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