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후 “여성들이 좋아할 포인트를 잘 아는 게 중요하다”

<div class="blockquote">많은 배우들은 말한다. 배우가 아닌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다고. 이 어렵고도 달콤한 꿈을, 박시후는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SBS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하 <완이만>)의 준석으로, 능글맞게 ‘이거 키스’를 하던 SBS <검사 프린세스>의 ‘서변’으로, 남자 비서와 투닥거리는 모습마저 귀여웠던 MBC <역전의 여왕>의 구용식으로 이뤄냈다. 박시후는 매 작품마다 그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이 모여 박시후표 멜로라는 하나의 장르를 완성했다. 그러나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시후는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보다 오히려 SBS <시크릿 가든>의 오스카(윤상현)를 닮았다. 무명 시절에도 단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었고,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박시후는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배우이자 남자였다. * 이 기사에는 <내가 살인범이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크린에 본인 얼굴이 나오는 걸 보니 어떻던가.박시후: 만족스럽다. (웃음) 조명을 잘 쓰셨는지 굉장히 샤프하게 나왔고, 생각보다 스크린에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큰 화면으로 보면 표정이나 눈빛도 들키기 쉽고 뭔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특히 이두석은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였다. 미소도 확 밝은 미소가 아니고 눈빛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묘한 눈빛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 <H3>“철없고 장난기 많은 캐릭터가 익숙하다”</H3>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박시후: 드라마에서 이미 했던 걸 식상하게 또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까. 정말 센 역할, 신이 많지 않더라도 강렬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살인범 캐릭터를 선택했다. 연기의 초점 자체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거였다. 관객들이 봤을 때 얘가 반성을 하러 나온 건지, 주목받고 싶은 건지,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런 건지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살인범 캐릭터가 아니라서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겠다. 박시후: 항상 양면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해왔다. 그냥 살인범 역할이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이미지가 살인범으로 확 바뀌는 건데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 작품이라 괜찮겠다 싶었다. 스크린 데뷔작인데다 캐릭터 자체도 욕심을 부릴 요소들이 많았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최 형사(정재영)에게 무게 중심을 양보하는 것 같았다.박시후: 그래서 좀 아쉽다. 연기 변신을 하는 거니까 한 번 더 살인범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두석이 누군가를 협박하는 신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비슷한 신이 하나 더 있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그렇게 됐는데, 그럴 거면 아예 촬영하질 말던가. (웃음) 그만큼 욕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첫 영화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뭐였나. 박시후: 크게 빛을 보거나 확 일어선다기보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 첫 작품으로서 훌륭한 선택이었고 박시후가 스크린에도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날 계속 주인공으로 쓰셨던 드라마 감독님들은 영화를 보시고 캐릭터를 좀 더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하시던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일단 작품이 재밌어야 된다. 작품이 잘 되면 나한테도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개인적인 욕심은 다음 작품에서 풀면 된다. KBS <스타 인생극장>에서 <나는 살인범이다> 대사에 밑줄을 긋고 본인의 생각을 꼼꼼히 적어놓은 대본이 공개됐다. 전작들에서도 박시후만의 캐릭터로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하는 편인가. 박시후: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하고 한 작품 한 작품 하면서 쌓이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포인트를 잘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장면인데도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부분이 있으면 꼼꼼하게 모니터하는 편이다. <검사 프린세스>에서 ‘이거 키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대본에는 ‘반짝이며 키스한다’고 나와 있는데, 뭘 어떻게 반짝여? 눈을 반짝이나? (웃음) 그래서 생각한 게, 일단 살짝 웃으면서 키스를 하고 저 앞에 있는 ‘윤검’을 쳐다보면 나쁜 남자의 ‘스멜’을 풍기면서도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어느 정도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나. (웃음)박시후: 뭔지 모를 노하우가 있지. 하하하. 따로 연구를 했다기보다는 내 눈빛이 좀 슬퍼 보이나 보다. 작품을 하면서 여유도 좀 생겼던 것 같고, 경험도 중요하다. MBC <결혼합시다> 때 3년 정도 사귀던 여자 친구랑 헤어졌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 오빠는 나랑 있었을 때의 모습을 왜 자꾸 드라마에서 보여주느냐고. 여자 친구한테 했던 걸 보여주면 반응이 좋을 것 같았다. <결혼합시다>에서 철없고 장난기 많은 캐릭터였는데 그 모습이 실제 나한테도 익숙한 면이었다.<H3>“다 똑같은 실장님, 재벌 2세 역할을 한 건 아니었다”</H3>
<완이만>때도 연기력과는 별개로, 배우가 가진 감수성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세컨드로 남아달라는 설정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박시후: 준석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남자다. 여성 시청자들은 그런 것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이 캐릭터는 정말 잘 될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극이 진행될 수록 초반보다 비중이 커졌고, 이 작품을 계기로 박시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박시후: 정말 기분 좋았다. 동료 배우들 보면 팬들이 촬영장에 찾아와서 도시락 이벤트를 해주는데 그게 정말 부러웠다. <완이만> 이후부터 갑자기 팬들이 2~3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데뷔한 지 10년 넘었을 때인데 정말 고마웠다. <완이만> 이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자칫 실장님 전문 배우로 남을 수 있었는데 그 안에서 미묘하게 다른 지점을 보여줬다.박시후: 어설프게 보신 분들은 다 똑같은 실장님, 재벌 2세 역할을 했다고 하시는데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서인우는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었고, 구용식은 코믹했고, 캐릭터마다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다. 영역을 넓히기보다 한 우물을 깊이 파서 ‘박시후표 멜로’라는 장르를 구축했다는 느낌이 든다.박시후: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과하게 이미지 변신을 할 수가 없다. 남자 주인공들은 거의 다 백마 탄 왕자다. 왜냐면 그게 매력 있으니까. 그래서 사극 <공주의 남자>를 선택했다. 대본도 탄탄했지만, 초반에는 능청스러운 도령이었다가 뒤로 갈수록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니까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더라. 비주얼도 만화에 나오는 무사 같으니까 어린 친구들한테도 어필할 수 있고. 실제로 애들도 많이 좋아했다. 차기작 역시 그동안 잘해왔던 로맨틱 코미디 <청담동 앨리스>다. 차승조는 어떤 남자인가. 박시후: 굉장히 망가지는 인물이다. 구용식 저리 가라다. (웃음) 작가님이 정말 감정의 차이를 확확 주셔서 ‘찌질’할 땐 정말 ‘찌질’하고 집요한 면도 있고, 빈틈도 많고 누굴 보호해줄 땐 굉장히 멋있는 키다리 아저씨 같다. 그동안 내가 했던 캐릭터들의 총집합이다. 여전히 드라마에서는 로맨틱 가이의 모습을 어필하고 있는데 실제 박시후는 어떤 남자인가. 박시후: 굉장히 허술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는데 <스타 인생극장>에서 키친타올을 치킨타올이라고 한 적도 있다. 하하. 그런데 예전 여자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그런 모습이 귀엽고 매력적이라고 하더라. 나쁜 남자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다.<H3>“끼는 전혀 없었는데 그나마 갖고 있는 게 끈기였다”</H3>
1997년에 배우 생활을 시작해 2008년 <가문의 영광>으로 주인공에 캐스팅 됐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무엇으로 버텼던 것 같나.박시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기가 가상한데, 겁도 없었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시골에서 “넌 TV 나오면 잘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시작하게 됐다.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몇 개월 동안만 고심하고 딱 결정하고 나서는 서울 가면 금방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10년 가더라. 그 때 목표는 배우였나, 스타였나.박시후: 꿈은 영화배우였는데, 성공은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식들 데리고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니셔서 6~7살 때부터 영화 보는 게 굉장히 익숙했다. 그런데 워낙 시골이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남한테 뭔가를 보여주는 게 쉽진 않았다. 내가 연기자가 될 거라곤 누구도 상상을 못했다. 어머니는 숫기 없는 애가 연기를 하다보면 성격이라도 조금 활달해지겠다 싶어서 허락하셨고, 아버지는 어차피 조금 하다가 관둘 거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씀하셨다. 연기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끼는 전혀 없었는데 그나마 하나 갖고 있는 게 끈기였다. 연기 아카데미에서도 100명이 시작했는데 수료할 때는 나를 포함해서 5명만 졸업하더라. 어렸을 때도 빨리 달리기보다 오래 달리기에 자신 있었고, 다른 상은 못 타도 개근상은 꼭 탔다. 자신감 하나로 상경해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이 연극판이었다.박시후: 연극 포스터 붙이고 전단지 돌리면서 틈틈이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았다. 남들은 내가 그 작품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는지, 없는 역할을 했는지 모르니까 일단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이면 주인공 옆에 앉아있는 역할이라도 출연했다. 그러다가 애가 깔끔하게 생겼으니까 주연을 주시더라. 어차피 대사도 많이 없고 이미지로 가는 캐스팅이었다. (웃음) 비주얼이 깔끔하니까 광고 제의가 들어오고, 광고를 찍으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좋게 하다 보니까 에이전시에서 매니지먼트 소개를 해줬다. 그 시간동안 자신감이 꺾인 적이 한 번도 없었나.박시후: 전혀 없었다. 굳이 촬영장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웃음) 같이 연기하는 형도 “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는데 반응이 좋네” 라고 얘기했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 일을 못했겠지. 배우든 선수든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이 아무리 선수한테 뭐라고 해도, 이 사람이 충분히 자격이 되니까 감독이 마운드에 올려준 거 아닌가. 그리고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을 많이 키워 주셨다. 약간 미흡해도 그걸 꼬집어내기보다는 항상 잘한다고 치켜세워주셨다. 젊은 친구들은 한 순간에 확 올라가는데 난 작품을 하면 반응은 괜찮은데 조금씩 쌓아가는 느낌이었다. <결혼합시다>와 MBC <넌 어느 별에서 왔니>를 하면서 조금 올라갔다가 슬럼프가 오고 <완이만>을 하면서 반응이 생기고 <가문의 영광>을 하면서 또 조금 올라서고. 정말 한 계단, 한 계단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과한 욕심을 내지 않는 건가.박시후: 큰 목표는 있지만 중간 중간 하나씩 밟아가는 재미가 있다. 사실 <공주의 남자>로 확 이슈가 됐지만, 그 전 작품들도 망하진 않았다. 하하. 확 흥행하진 못했어도 반응은 있었고, 캐릭터도 늘 사랑 받았다. 그럼 큰 목표는 뭔가.박시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요즘 보면 글로벌하지 않나. 일단 목표는 아시아다. 중국 시장을 잡는 게 세계 시장을 잡는 것 같다. 혹시 할리우드 욕심도 있나. (웃음)박시후: 할리우드는 언어 때문에 쉽진 않을 것 같다. 하하. 근데 그거야 뭐, 대사 없는 역할로 시작하면 되니까. 하다보면 늘겠지.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10 아시아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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