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프로야구 흥행, 심판도 한몫했다

(사진=정재훈 기자)

시쳇말로 ‘대박’이 터졌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100억 원이 넘는 입장 수입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페넌트레이스에서도 700만 관중을 넘어선 프로야구. 사상 최고 흥행을 할 수 있던 데에는 숨은 조력자들이 있다. 바로 심판이다. 시스템 정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프로야구가 30여년 만에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4월 어느 날 춘천 ○○호텔 로비에서 글쓴이와 이종남 기자(작고) 그리고 김광철 심판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호텔 입구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박현식(작고)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이었다. 그해 삼미는 홈구장인 인천 숭의야구장이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보조구장으로 선정돼 보강공사를 하느라 전기 리그 내내 ‘특별 경기’라는 이름으로 춘천 등지에서 경기를 치렀다. 당시 선수단은 춘천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박현식 감독이 다가오는 것을 본 김광철 심판은 “어서 자리를 옮기자”며 글쓴이와 이종남 기자를 재촉했다. 프로야구 초창기 권총을 빼 드는 듯한 동작으로 ‘스트라이크’를 외쳐 올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김광철 심판은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개막전(1982년 3월 27일·동대문 구장) 주심을 맡았던, 당시 기준으로 중견 심판이었다. 철도청과 육군에서 주력 타자로 활약한 김광철 심판은 아마추어 실업야구 시절을 포함해 박현식 감독과 ‘야구인’ 선후배 사이였기에 굳이 자리를 피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김광철 심판은 대선배인 박현식 감독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호텔에서 빠져나갔다. 왜 그랬을까. 답은 야구규칙 9.05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에 있다. A4 용지로 족히 한 장 분량인 ‘지시’ 가운데에는 “구단 임직원에 대하여는 항상 예의를 차려야 하나 구단 사무소를 방문하거나 특정 구단 임직원과 친밀하게 행동하는 것은 피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광철 심판은 프로야구가 막 시작한,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하던 그 시절 이 같은 ‘지시’를 철저하게 이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3년 반여 뒤인 1984년 9월 30일. 1만 5천여 관중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가운데 프로야구 출범 이후 세 번째 한국시리즈 시작을 알리는 이규석 주심의 ‘플레이볼’ 소리가 대구시민구장에 울려 퍼졌다. 롯데 선발 최동원(작고)과 삼성 김시진~권영호의 피나는 투수전이 이어졌다. 최동원은 이만수, 장효조(작고), 박승호, 정현발, 장태수, 오대석, 배대웅 등 누구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는 삼성 타선을 9이닝 동안 138개의 공을 던져 7피안타 6탈삼진 3사사구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한국시리즈 사상 첫 완봉승(4-0)을 거뒀다. 유격수 정영기, 교체 2루수 이광길, 교체 좌익수 김재상 등 야수들의 눈부신 수비가 최동원의 역투를 거들었다. 김시진은 2회초 박용성에게 2점 홈런, 4회 초 김용희에게 좌월 2루타를 맞았지만 3이닝 4피안타 2탈삼진 3사사구로 투구 내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어 던진 권영호는 6이닝 3안타 2탈삼진 무실점이었다. 롯데가 4점을 뽑았지만 사실상 투수전이었던 셈. 관중들은 최동원과 김시진, 권영호의 공 하나하나에 숨을 죽였다. 이규석 주심의 스트라이크존은 경기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판정에 대한 자신감은 단호한 몸짓에서 나타났다. 프로 첫해에 이어 또다시 한국시리즈에 나선 ‘호화 군단’ 삼성으로서는 아쉬운 시리즈 첫 패배였다. 감독과 선수는 물론 구단 관계자, 관중 그 누구도 심판 판정에 뒷말은 없었다. 다시 야구규칙 9.05을 들여다보자. 문서에는 “플레이를 정확히 보았다는 확신이 있으면 ‘다른 심판원에게 물어보아 달라’고 하는 선수의 요구에 응할 필요는 없다. 확신이 없으면 동료의 한 사람에게 묻는 것도 좋으나 도를 넘지 않게 하고 기민하게 플레이를 하여야 한다. 의문이 있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동료와 상의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어 “그러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심판원의 위엄도 중요하나 ‘정확’하다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라고 ‘지시’하고 있다. 심판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비유되곤 한다. 오케스트라는 현악기와 관악기, 타악기 등이 오묘한 소리의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소리 없는 악기가 있다. 지휘자다. 선수들이 화려한 플레이로 관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사이 소리 없이 경기를 조율하는 이가 심판이다. 심판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2012년 한국시리즈를 복기해 보시라.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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