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정말 경제가 문제인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행복'

[아시아경제 백재현 온라인뉴스 본부장]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 겪었던 일이다. 잘 차려 입은 중년의 한 아주머니가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들고 타서는 빈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열차가 출발하자 그만 가방이 뒤로 주르르 밀려 가버렸다. 당황한 아주머니는 황급히 가방을 따라갔지만 결국 열차 끝에 가서야 가방을 붙잡았다. 아주머니는 겸연쩍어 하는 웃음을 웃으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기자가 놀란 것은 그 순간 열차 안의 분위기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전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놀라거나 심지어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일견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라 한 두 사람은 웃을 법도 한데 말이다. ‘아주머니가 부끄러워할까 봐 애써 모른 척 했겠지’라고 나름 해석 했지만 어색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는 점점 더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해 져가고 있다. 요즘 지하철엔 무표정한 얼굴들로 가득하다. 눈을 마주치면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얼른 눈을 돌린다. 이어폰을 꽂고 손에 든 작은 모니터만 쳐다보다 총총히 내리는 사람들. 행여 부딪히기라도 하면 힐끔 쳐다보고만 말뿐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속에서 심한 고립감과 알 수 없는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다면 기자가 너무 과민한 탓일까.요즘 대통령 후보들의 캐치프레이즈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경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창조경제’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공정경제’를,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혁신경제’를 각각 내세우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크게 보면 ‘성장우선’이냐 ‘분배우선’이냐로 대별할 수야 있겠지만 사실 국민들 눈에는 거기서 거기다.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경기 불황에 허리가 휘는 국민들이고 보면 후보들이 맥락을 잘 못 짚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다. 무엇을 위한 ‘경제’인가라는 물음에 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행복이지 않을까. 경제문제만 해결된다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현재 국민들이 불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꼭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만일까.우리나라는 8년 째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10만 명 당 자살률이 33.5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2.9명보다 훨씬 높다. 국회가 나서 지난 2010년에 소위 ‘자살예방법’을 만들었지만 자살률이 낮아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게다가 국민총생산이 늘어날수록 자살률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노인과 학생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만일까 생각해봐야 한다. 오히려 경제가 발전할수록 불행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말이다. 얼마 전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34개 OECD 국가 중 32위다.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리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초라한 성적표다. 그 이유를 경제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서 찾는 것도 물론 설득력이 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국민성 탓이라는 진단도 틀리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아쉬워 하는 것은 ‘믿음’이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최소한 불행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누군가 나도 모르게 나의 노력의 결과물을 가로채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내가 힘들어지면 이웃이 나를 위로해줄 것이라는 믿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해 일해줄 것이라는 믿음들 말이다. 믿음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불안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행복해질 수가 없다.‘창조’ 해봐야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혁신해봐야 나에게 혜택이 돌아올 수 없다면, ‘공정’을 믿을 수 없다면, 국민들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나를 잘살게 해줄 대통령보다 나를 불행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대통령을 바라고 있다.백재현 온라인뉴스 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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