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 사람들 못 오는 곳/올라와보니 뜻이 맑아지네/산모습은 가을이라 더 좋고/강빛은 밤이라 더 밝네/흰 새 높이 날아가버린 뒤/외로운 돛배 홀로 가벼이 가네/달팽이 뿔 위에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네/반평생 공명을 찾아다녔던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自 蝸角上/半世覓功名
김부식의 '감로사(甘露寺)' ■ 고려 김부식(1072-1151)이, 교유했던 스님인 혜소(慧素)와 운을 나누며 읊은 시다. 개성 오봉산 아래에 있던 감로사에서 스님을 만나 달밝은 서강(西江) 위에서 가만히 노래한다. 속객부도처 등림의사청. 몹시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 아무나 못 오는 곳, 그 경지에 올라오니 생각이 절로 청신해진다. 2연의 3,4행은 단풍과 달빛이란 말을 쓰지 않고도 그 둘의 풍경을 멋지게 잡아냈다. 3연은 이백의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뭇새 높이 날아간 뒤 외로운 구름 한가로이 가네)의 변주이다. 마지막 연은 스스로를 돌아본다. 와우각상(蝸牛角上, 부질없는 싸움을 조롱한 장자의 비유) 50년 공명쟁탈전이 이 절간에서 문득 부끄럽다. 김부식만큼 세상의 높은 산에 오른 이들이여, 돌아와 벼랑 위 감로사 밤 하늘 아래 가벼이 떠가는 돛배 한 척을 본 적 있는가. 여긴 속객이 못오는 경지이다.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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