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비라드 에실로코리아 대표
파란 눈과 듬직한 체격. 말끔하게 정장을 빼입은 그가 업무를 보는 모습이 사장실 유리 너머 보였다. ‘사장포스’를 내뿜는 카리스마가 전해진다.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여 마실 듯한 첫 인상이다. 그가 입을 열자 반전이 시작됐다.“한국 떡국 정말 맛있습니다. 어제 저녁으로는 떡만둣국을 먹었어요. 지난 여름에는 콩국수를 즐겨 먹었습니다.” 토종 한국인 못지않은 말이다. 한국에 온지 올해로 7년째라는 프랑스인 크리스토프 비라드(Christophe Birades) 에실로코리아(안경렌즈 제조사) 대표다. “한국에는 2006년에 왔죠. 전에는 여행으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가을이었는데 나뭇잎들이 알록달록하고 경관이 정말 좋았습니다. 유럽 못지않게 ‘나이스(NICE)’ 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절이나 궁 같은 역사적인 공간과 가을 나무의 조화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비라드 대표는 한국 곳곳을 여행했다. 바라드 대표는 서울은 물론 부산과 목포에 맛집이 많더라며 줄곳 자신의 여행담을 늘어놓았다. 한술 더 떠 한국인인 기자에게 경주를 가보라고 추천까지 한다. 그는 “경주 교동법주 같은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모르더라”며 “아시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의 변화 시점에 있는 경주를 방문해 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인 만큼 직접 보고 느끼면, 단순히 가이드에서 보는 수준을 넘어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비라드 대표는 두 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먼저 프랑스어 블로그 ‘서울 위켄드(Seoul Weekend)’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곳으로 지방 곳곳의 특색 있는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어 블로그 ‘울랄라 코리아’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한국 문화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테마가 다양해 여러 주제를 자유롭게 논할 수 있고, 외국인과 한국인 모두가 공감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프랑스 사람 뿐 아니라 유럽사람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한국인조차도 한국 역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잘 모르더라구요. 서울에서 남한산성이 정말 가까운데 회사 직원들에게 물으면 안 가봤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가 보니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석벽부터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처럼 비라드 대표는 한국 역사와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에 몇 해 전부터 전통 장인 후원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궁, 시장, 전통 연 장인 등 국내 전통 장인들에게 꼭 맞는 안경을 선물하고 작품 활동 후원금을 전달해오고 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비라드 대표의 사무실 곳곳에 장인들에게 선물 받은 연, 피리, 화살 등이 전시돼 있다. 마지막으로 비라드 대표는 한국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 발전은 정말 빨라요. 그러나 모든 분야가 다 따라갈 순 없잖아요. 한국에 사는 게 좋을 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안경렌즈 기술을 한국에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만족감을 느낍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 보다는 한국에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달시파켓미국보다 재미있는 한국 영화 “펜을 넘어 영화인 됐죠”
“한국 너무 재미있는 나라예요.” 영화 <돈의 맛>에서 로비스트 역할을 맡았던 로버트의 대사다. 재벌 백씨 집안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그는 대한민국 정재계를 대상으로 뒷거래를 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인상과 냉소적인 말투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가 누구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는 영화평론가이자 배우, 영화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달시 파켓(Darcy Paquet)이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러시아어를 사용할 수 있는 동유럽 체코에서의 삶을 계획하던 중 대학원 친구들을 통해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체코로 가기 전 여행을 목적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어를 잘 몰랐지만, 이미 외국어인 러시아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어 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한국에 온지 6개월 후에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한국어를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죠. 그렇게 물 흐르듯 살다보니 벌써 15년차에 접어들었네요.” 선한 인상, 사람의 눈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하는 매력까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영화에서 봤던 차가운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돈의 맛>이 영화 첫 출연은 아니다. 옴니버스영화 <원 나잇 스탠드(2010)>에도 나왔다. 지난 2008년 한 영화제에서 달시 파켓 씨는 임상수 감독을 만났고, 임 감독으로부터 자신이 쓴 영화 평론을 봤다는 인사를 받았다. 임 감독은 그가 출연한 <원 나잇 스탠드>를 봤고, 이를 인연으로 임 감독이 그의 출연을 제안한 것이다. 올해에는 10월 25일 개봉 예정인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배우가 아닌 영화평론가이자 기자로서 달시 파켓 씨의 삶은 어떨까. 그는 한국 영화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코리안 필름’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됐으며, 영화판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없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죠. 이방인이 아닌 한국 기자 입장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요. 정보 검색이 용이하고 빨라 많은 도움이 됐어요. 특히 한국에는 박스오피스 시스템이 있어 영화에 대해 발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는 영화 전문지<스크린인터내셔널>에서 한국 주재 기자로 5년간 일했다. 이후 <버라이어티>에서 3년 정도 활동한 바 있다. 그가 주로 다룬 내용은 한국 영화계와 영화 산업, 배급 시스템과 발전과정 등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영화를 만들고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영화가 나오면 관객의 관심도 많고요. 한국에서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죠. 영화 자체의 품질과 연출도 좋아, 재능 있는 연기자도 많다고 봐요. 미국은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한국은 웃음이나 슬픔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매력이 있어요.” 달시 파켓 씨는 한국 영화계에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 쓰는 감독도 많지만 연출과 시나리오는 다른 능력”이라며 감독과 작가의 일이 구분돼 전문성을 가질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한국에 온지 15년차입니다. 이제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 영화계 한 인물로 자리할 수 있어 기쁩니다.”단문(段文) 우리은행 계장 국내 첫 외국인 은행원 한국 기업문화 완벽 적응기
“중국 말을 정말 잘 하시네요!” 당황스러운 일이다. 모국어를 했을 뿐인데 이런 칭찬을 받는다는 건 말이다. 그러나 단문(段文) 우리은행 계장에겐 종종 있는 일이란다. 사람들이 그를 한국인처럼 보기 때문이다.단아한 인상에 자신을 꾸밀 줄 아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 쇼핑장소는 역시 명동이라고 말하는 그는 또래 여성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미모까지 겸비한 그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듣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문 계장은 끊임없는 두드림 끝에 국내 첫 외국인 은행원이 됐고, 지난 2010년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진시황의 병마총으로 유명한 중국 시안(西安)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입니다. 당나라의 수도였고 역사가 깊은 도시예요. 중국에서 대학교까지 마친 후 한양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대학교 때는 응용수학을, 대학원에서는 통계학을 전공했습니다.” 차분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한국 발음은 또렷했다. 단문 계장은 국내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글로벌 인턴십에 참여했고, 한 달 동안 우리은행 중국법인에서 일하면서 가족 같은 기업 문화에 반했다. 전공을 살려 금융쪽에서 일하니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더욱 커졌다. 하지만 당시 우리은행은 외국인을 채용하지 않았고, 대학원 졸업 후 중국으로 돌아가 한국영사관에서 근무했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끊임없이 한국의 채용 정보를 주시했고, 2009년 하반기부터 외국인 지원도 받는다는 소식에 단문 계장은 주저하지 않았다. “외국인이니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 우선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입사 원서를 다 쓰고 난 후에 한국 친구들에게 교열도 받고요. 금융 관련 책자도 많이 읽는 등 꾸준히 공을 들였습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면접 준비를 하면서 세 번을 왕복한 끝에 우리은행 정식 직원이 됐어요.”
단문 계장에 따르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고객과의 소통에서 오해가 생겨 일처리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은행원 3년차인 그는 이제 한국말은 물론 한국 기업 문화에도 완벽 적응했다. “고객이 ‘왜 이렇게 중국 말을 잘하냐’고 물을 때 당황스럽지만 웃음이 나요. 중국의 경우 선후배가 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분위기인데, 한국은 선후배관계가 중요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존댓말을 못해서 실수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선배를 모실 줄 아는 후배이자 친근한 직장 동료입니다.” 바로 어제도 회식이 있었다는 단문 계장은 “보통 2차까지는 꼭 참석한다”며 “한국 회식 문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에 가면 적응이 안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단문 계장은 외환 쪽을 중점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외국인 투자 파트의 전문가를 꿈꾸는 그는 요즘 외국인 상품에 대해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단다. 국내 첫 외국인 은행원의 꿈을 이룬 그가 이제는 두 번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이코노믹 리뷰 이효정 기자 hyo@<ⓒ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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