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인력시장 풍경
[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연휴동안 세종시로 가는 이삿짐 일이 있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추석연휴 첫 날인 지난 29일 새벽 5시30분. 서울 구로동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이석훈(가명·50)씨는 회색 반팔 차림에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걸친 채 나와 있었다. 이날은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기온이 14도까지 떨어져 쌀쌀했다. 새벽 4시에 나왔다는 이씨는 막노동을 시작한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15년 전이면 IMF사태 때다. 이씨는 "금속을 성형하는 금형으로 사업을 했는데 IMF 때 회사가 부도가 났다"고 말했다. 추석연휴에도 일을 찾아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왜 고향에 안 내려갔냐고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나마 올해는 '세종시'가 있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이씨는 "원래 추석에는 일이 없는데 오늘은 세종시로 이전하는 이삿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고 말했다.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해 10시간정도 일하는데 일당 12만원을 받는다. 물론 수수료와 교통비를 공제하기 전 일당이다. 그래도 평소 일보다는 일당이 좋은 편이다. 이씨는 "목수 일당이 10만원이고 잡부는 8만원 정도인데 많이 받는 편이지"라며 빙긋 웃어보였다.같은 시각 구로동 인력시장에는 추석연휴지만 1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이 보도를 차지하고 있어 길을 헤집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인력시장은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표지판이나 시장터는 없다. 그저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나와 노동을 사고파는 시장을 형성한다.이곳은 남구로역 5번출구 근처와 건너편 하나은행 앞, 두 곳으로 사람들이 나눠져 있다. 하나은행 앞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이다. 대부분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5번출구 근처에는 한국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남구로 인력시장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기로 유명하다. 주변에는 약 30여개 인력사무소가 성업 중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인력회사 중 하나인 N인력사무소도 이곳에 있다. 부산 출신의 40대 김진호(가명)씨는 "천호동이나 성남에도 인력시장이 있지만 여기만큼은 아니다"라며 "평소에는 1000명 넘게 사람들이 나와 길거리가 바글바글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인력사무소는 수수료를 일당의 5%만 가져가지만 여기는 10%씩 뗀다"며 "그래도 사람들이 항상 많다"고 말했다.사람들은 일당도 구로동 보다는 천호동이나 성남 쪽이 더 많다고 했다. 하지만 쉽게 자리를 옮기기 어렵다. 구로동 근처에 잠자리가 있는 인부들로서는 대중교통도 안 다니는 새벽에 일감을 찾아 서울을 가로지를 여력이 없다. 일감 자체도 많이 떨어졌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2010년부터 눈에 띄게 일감이 줄었다고 한다. 건설경기가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하도급 업체를 떼어내는 탓이다. 지금도 일감이 줄고 있어 할 수 없이 인력시장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중국인 인력은 일당을 더 적게 받으면서 일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일감이 더 줄었다는 반응이다. 12년째 구로동으로 출근하고 있는 염상환(가명·54)씨는 "잡부 일당이 하루에 8만원인데 여기에 수수료 10% 떼고 오가는 교통비 빼면 하루에 6만5000원 남는다"며 "많이 일해야 20일데 한달에 120만~130만원 가지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365일 중에 360일을 일해도 못 떠나는게 이 생활인데 고향은 언제 내려가겠냐"고 말을 흐렸다. 지선호 기자 likemo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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