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 경기장, 한 선수가 페널티 스팟에 섰다.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골대 구석에 정확히 꽂혔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4강이란 신기원을 이룩하는 순간이었다. 10년 뒤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 선수는 양복을 차려입은 감독이 되었다. 대신 그의 분신이 된 제자가 데칼코마니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전인미답의 올림픽 4강 진출이었다. 21세기 한국 축구의 위대한 발걸음마다 그가 있었다. 바로 홍명보다.한국은 5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에서 개최국 영국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10년 만에 이룩한 또 하나의 금자탑이다. 우연히 나온 성과는 아니다. 홍 감독은 2009년 U-20(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이미 3년 뒤 런던을 바라봤다. 4-2-3-1 포메이션과 미드필드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전술 역시 당시부터 구축했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21세 이하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꾸렸다. 올림픽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한국 축구 올림픽 발자취의 걸림돌이었던 와일드카드 잔혹사도 없었다. 오랜 시간 틀을 잡아왔기에 약점을 더 정확하게 파악했다. 정성룡과 김창수는 골키퍼와 오른쪽 풀백의 완벽한 대안이었다. 마지막 퍼즐이었던 원톱엔 광저우에서 함께 했던 박주영을 선택, 공격력을 강화했다. 대표팀은 완전체에 가까워졌다.특히 박주영의 발탁은 홍명보호 전체에 흐르는 믿음의 줄기를 보여준다. 사실 '와일드카드 박주영'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실력과 팀 적응 여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병역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터였다. 여론은 부정적이었고, 자칫 올림픽 준비 과정과 결과에 따른 엄청난 후폭풍도 감당해야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함께 기자회견에 나서 제자를 향한 비난의 화살 앞에 방패막이가 되어줬다. 올림픽 최종예선 당시에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얘기했다. "내 마음 속엔 칼이 있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칼이 아니다. 너희가 다칠 것 같으면 나 스스로를 죽이는 칼이다. 너희는 팀을 위해서만 뛰어라." 젊은 선수들은 쉽게 흔들린다. 특히 봇물 같은 비난 여론에 약하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너희는 최선과 '일심(一心)'을 다 해서만 뛰라는 당부는 그런 선수들을 굳건히 잡아주는 원동력이었다. 자신들을 믿고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치지 않을 장수는 없다. 유난히 선수들이 홍명보호에 애착을 갖는 이유다.그의 사전에 권위적 태도나 강요는 없다. 축구와 생활 모두에서 최대한 자율을 제공한다. 선수들조차 "외국인 감독님 같다"라고 말할 정도다. 소통에도 힘을 쓴다. 질책보다는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아준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에겐 일일이 찾아가 진심어린 조언과 대화를 아끼지 않는다. 선수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심리적ㆍ정서적 측면까지 보듬어줘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소통은 존중과 배려로 이어졌다. 코칭스태프 이하 전 선수단이 끈끈히 뭉쳤다. 평소 홍 감독이 주장하는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가 완성됐다. 스포츠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팀은 늘 보유한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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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 노림수도 적중했다. 홍 감독은 이날 지동원 선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앞선 경기에서 다소 부진했던 김보경을 대신한 선택이었다.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영국을 상대로 힘을 발휘할거란 믿음이었다. 지동원은 결과로 보답했다. 전반 29분 대포알 같은 30m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팀 전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 승부차기도 예상했다. 훈련 때부터 철저히 준비를 했다. 5명 모두 킥을 성공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홍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스위퍼였다. 항상 침착함과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은 그대로 선수들에게 전수됐다. 지난달 뉴질랜드와의 평가전부터 올림픽 본선까지, 홍명보호는 어떤 위기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 8강전에선 홈 텃세와 두 차례 페널티킥 허용에도 끝까지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쳤고, 결국 승리했다.10년 전과 차이는 있다. 2002 월드컵 4강이 완결된 신화라면, 2012년 런던의 질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 목표는 한국 축구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다. 기회는 두 번이나 있다.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패하더라도 일본-멕시코 경기 패자와 동메달 결정전을 치를 수 있다. 물론 그 이상의 결과를 꿈꾼다. 아시아 축구의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은 일본의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이다. 홍명보호가 갈아치워야 할, 갈아치울 기록이다. "지금 상태라면 어떤 팀도 두렵지 않다."그의 사자후에서 10년 전 거스 히딩크의 "난 아직도 배고프다"가 오버랩 됐다면 과장일까. 전성호 기자 spree8@<ⓒ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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