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8월보다 고독했던 때는 없네' 이빈섬

8월만큼 황홀했던 적은 없네/숲 사이로 내려온 빛나는 권태/절정의 순간에 머리가 잘려나간 숫사마귀/검은 개 한 마리 헐떡이며 지나가는 늦은 오후/8월만큼 고독했던 때는 없네/귀청이 나갈 듯 울어대는 매미소리/하룻밤 사이에 굵어진 감잎 사이의 열매들/애인도 잃어버리고/들어가앉을 무덤도 잃어버린 날/내 생일날/태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고요했던 날/시간이 홀로 달아오른 단지 속처럼 끓어/수치도 분노도 증오도/다 저 혼자 끓고 끓어올라/제풀에 식어 나즉히 들어앉던 목소리/8월은 내가 영접한 가장 고요한 신이었네/기우뚱한 길에 내린 무거운 햇살/갈대같이 휜 허리를 틀며/잠깐 숨고르는 빈 방에서/8월보다 고독했던 때는 없네/죽음도 말 건네지 못했던/서먹하고 서먹한 고독으로 짠 레이스/돌아누운 여자같이 기나긴 빛의 능선/9월이 와서 바스라진 시간의 뼈들을 거두리/8월보다 미쳤던 날들은 없네■ 8월이 오면, 이 시의 행간 속에 뛰는 빛처럼 산다. 삶이 계속되는 한 내겐 8월이 있을 것이고 나는 이 시 속으로 걸어나와 가장 아름다웠던 고독의 환한 빈 방을 기웃거릴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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