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조민서 기자, 김수진 기자, 이상미 기자, 나석윤 기자, 박나영 기자]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시민들의 일상과 밤 풍속도를 바꿔놓고 있다. 가족, 연인, 친구 단위로 여름밤을 나는 다양한 풍속도가 나타나자 한강 둔치, 커피숍, 찜질방, 심야극장, 청계천 등은 '열대야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운동으로 무더위를 날리는 시민들에겐 이미 열대야가 '극복'이 아닌 '즐김'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장마가 걷힌 뒤 찜통더위는 해가 진 이후에도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지난 23일을 시작으로 사흘째다. 24일 밤 10시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에는 가족단위로 잔디밭 돗자리 위에서 야식을 즐기거나 한가롭게 한강변을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더위를 씻으려 시원한 캔 맥주 따는 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반면에 강변에서 운동 삼매경에 빠진 올빼미 운동족들도 보였다. 걷고, 자전거를 타고, 스케이트 보드와 인라인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집에서 더위와 시름하느니 운동으로 더위도 쫓고 건강도 챙긴다며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정영경(여·42·서대문구 아현동) 씨는 “장맛비가 잠시 주춤한 뒤 어제, 오늘이 가장 더운 것 같다”며 “땀 한번 쫙 빼고 샤워하면 몸도 가뿐하고 잠도 잘 올 것 같아 동네 주민들과 운동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양호준(남·11·마포구 성산동) 군 역시 “집에만 있기 덥고 지루했는데 아빠가 일찍 퇴근해 놀러 나왔다”며 “아빠랑 같이 자전거 타면서 운동하니까 기분이 상쾌하다”고 웃었다.
'이열치열'은 헬스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에어컨을 꺼달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다. 이날 밤 9시 한 대학가 헬스장은 12대의 러닝머신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곳 헬스장 관장인 이 모씨(남·36)씨는 "학생들이 방학을 맞은 7월 이후 회원이 더 늘었다"면서 "땀 흘리러 왔으니 아예 에어컨을 꺼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거울을 마주보고 자세를 바로잡아가며 아령을 들고 있던 김 모(남·27)씨는 "온도를 한껏 낮춰놓으면 운동하는 의미가 사라진다"며 "운동효과를 위해 헬스장은 적정온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모(여·24)씨는 “낮에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를 많이 먹게 된다”면서 “반바지를 입어야 하니 더워질수록 다이어트에 신경쓰게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열대야를 피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영화티켓 가격 8000원(성인 기준)이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문화생활을 하고, 더위도 피하는 일석이조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가시', '다크나이트 라이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등 대형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한 것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직장인 이주영(여 31)씨는 "심야영화가 한산할 줄 알고 왔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실제로 지난 24일 용산CGV의 경우 밤 10~11시에 상영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경우 300석 규모의 좌석이 80%가 꽉 찼다. CGV관계자는 "지난주에는 장마라서 관객이 적었지만 이번 주에는 월요일 밤부터 사람들이 몰렸다"며 "주로 더위를 피해 온 20~30대 커플이나 부부들이 주를 이룬다"고 전했다.새벽까지 불 켜진 커피숍은 낮과 같은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24시간 커피전문점이 늘기도 했거니와, 시원한 커피숍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날 밤 10시, 관악구 대학가 인근의 프랜차이즈커피전문점 A 커피숍에서는 2~3층 매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조영관(남·28)씨는 "집에 에어컨이 없다보니 선풍기로는 더위가 가시지 않아 이곳으로 오게 됐다"며 "더위를 피하면서 과제를 하기에는 집 앞 커피숍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토익 공부를 하러 온 김나리(여·24)씨는 "평소 조용한 편이어서 이 커피숍을 자주 이용했었는데, 오늘따라 부쩍 사람들이 늘어나 소란스러운 것 같다"고 했다.인근 또 다른 B 커피숍에서 밤12시 까지 일하는 이 모(남·25)씨는 "날이 더워지자 밤 11시를 넘긴 시각까지 손님들이 자리를 뜨지 않는다"며 "많은 손님들이 몇 시간씩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등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저녁 8~9시부터 만석이 된다"고 말했다. '먹자골목'인 광장시장도 불야성이었다. 밤 10시께 찾은 시장 안은 전등빛이 화려했다.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밤마실'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에는 순대와 녹두부침개, 육회, 중독성이 강해 붙어진 이름인 '마약김밥'까지 노점과 식당들이 골목 가득 포진해 있다. 인근 신당동에 살고 있는 주부 박혜정(여·38)씨는 "너무 더워서 잠이 잘 안 오지 않아 남편과 막걸리 한 잔 하려고 찾아왔다"면서 "운동 겸 걸어왔다"고 말했다. 녹두부침개와 막걸리를 선택한 부부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었다. 가까운 곳에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 김재원(남·22)씨도 친구 넷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김 씨는 "에어컨은 전기세가 무서워서 자주 못 켜고, 밤늦게까지 잠 설치다 보니 요즘은 영화관이나 광장시장, 청계천가에 나갈 때도 많다"고 덧붙였다. 오진희 기자 valere@조민서 기자 summer@김수진 기자 sjkim@이상미 기자 ysm1250@나석윤 기자 seokyun1986@박나영 기자 bohena@<ⓒ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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