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SERI) CEO 추천도서 vs 알라딘 선정 Sorry CEO 추천도서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바쁜 일상 속 '깊은 심심함'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언제인가. 하루 종일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하고 밤늦게까지 야근과 회식자리로 이어지다보면 심심할 틈조차 없다. 어쩌다 여유가 생기더라도 스스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올라가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낙오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에 이르러 꿈의 새가 깃드는 둥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을 위한 것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을 위한 것이다. 다가오는 여름휴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이완의 시간을 주고 싶다면 책 한권과 함께 '깊은 심심함'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SERI CEO 도서 vs Sorry CEO 도서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을 맞아 '올해는 어떤 책을 들고 떠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휴가철 서점가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삼성경제연구소(SERI) CEO 추천도서'다. 추천도서에 선정된 것만으로도 판매량이 70% 이상 급증하는 등 매년 여름마다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해마다 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여름휴가 중 CEO가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다. 올해도 추천도서에 경제ㆍ경영 7권, 인문ㆍ교양 7권 등 총 14권의 이름을 올렸다. 경제ㆍ경영 분야에서는 행동경제학 등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과 관련된 도서가 선정됐고, 인문ㆍ교양 분야에서는 자기성찰을 강조하거나 역사를 통해 현실을 재조명하는 도서가 다수 포함됐다. SERI CEO 추천도서가 큰 인기를 끌자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이를 패러디한 'Sorry CEO 추천도서'를 내놨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Sorry CEO' 기획전에서는 총 24권이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SERI CEO가 경제·경영 분야와 인문·교양 분야로 추천도서를 세분화했다면, 알라딘의 Sorry CEO 추천도서는 '경제학 공부 Restart', '야근을 중단하자', '노동현장' 등 총 6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이번 기획전을 진행한 알라딘 인문사회 담당 박태근 MD는 "SERI CEO 추천도서를 비롯한 각종 경제 관련 기관의 추천도서는 CEO가 리더로 앞장서고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를 따르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의 입장에 서 보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만나는 과정에서 위기를 함께 이겨낼 방법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대전환기 맞은 'CEO'들의 선택은? = 삼성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CEO의 절반(54.5%) 정도가 "월 평균 1~2권의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3권 이상 읽는다"는 응답자는 올해 43.2%로 전년대비 1.9%포인트 떨어졌다. 대다수의 CEO들은 바쁜 경영활동 속에서도 한 달에 1권 이상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경영의 지혜를 추구하는 셈이다.
'SERI CEO 추천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려 판매량이 가장 급등한 책은 무엇일까?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집계 결과, '경제·경영 분야'에서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8.0)가 꼽혔다. '인문·교양 분야'에서는 '책은 도끼다'(박웅현 지음/북하우스)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는 세계적인 MBA 와튼스쿨에서 가장 비싼 강의를 하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가 자신의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철저한 방법론을 소개한다. 저자는 진정한 협상이란 '상대의 감정이 어떤지 헤아리고 기분을 맞춰가면서 호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뒤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문·교양 분야의 '책은 도끼다'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역시 출간 이후 꾸준히 팔린 베스트셀러로 SERI CEO 추천도서로 선정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의 저자 박웅현씨가 쓴 '책은 도끼다'는 자신만의 독서법으로 창의력과 감성을 깨운 책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많이 읽는 것보다 깊이 있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봄으로써 '보는 눈'을 가지게 되고 사고의 확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책을 "내면에 얼어붙은 감성을 부수는 도끼와 같다"고 설명한다. '마흔, 논의를 읽어야 할 시간'의 저자 신정근 교수는 공자와 제자들의 인생과 철학을 담고 있는 논어를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년의 고민과 관심사에 맞게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냈다. ◆기존 사고의 틀 벗고 '새로움' 다시 채워볼까? = '평사원과 CEO가 함께 웃는 공정한 세상'을 위해 추천한 책 가운데도 눈에 띄는 책이 많다. '사장님, 노동현장 와보셨어요?'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책들은 노동현장르포인 '노동의 배신'(바버라 애런라이크 지음/부키)과 인턴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청춘착취자들'(로스 펄린 지음/사월의책) 등이다.
알라딘에 따르면 '노동의 배신'은 Sorry CEO 추천도서 목록에 오르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최저 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미국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직접 일하며 집필한 책이다. 책에 담긴 현실은 무겁지만 작가의 생생한 체험들로 풀어내고 있어 읽기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반대로 '직장인이여, 야근을 중단하자' 카테고리에 포함된 '피로사회'(한병철 지음/문학과지성사)는 얇은 책 두께에 비해 글의 내용이 무겁다. '피로사회'는 추천도서 선정 이후 판매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한병철 교수는 오늘날을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부른다. 과거의 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 시대의 미덕으로 추앙받고 있는 '멀티태스킹'에 대해서도 저자는 오히려 '퇴화'라고 지적한다. 멀티태스킹은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라는 것이다. 먹이를 먹는 동물은 동시에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먹는 중에 도리어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며, 새끼들도 감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은 자신이 마주한 대상에 사색적으로 몰입할 수 없다. '멀티태스킹'을 훌륭한 능력이라 믿으며 분주하게만 보낸 것은 아닌지 돌이켜 생각해볼만 하다. 휴가가 코앞이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걸으면서 사색하기', '깊은 심심함에 빠지기' 등의 여유를 되찾고 싶다면 이들 추천도서를 탐독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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