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속 중앙은행장·재무부 위상 강화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경제가 정치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금융위기로 중앙은행 총재들이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경제위기 속에 대통령·의회가 아닌 재무장관·중앙은행장의 위상이 강화되고 최고 권력이 경제통에게 넘어간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포브스는 미국 경제정책을 다루는데 중앙은행장이 대통령이나 의회보다 더 중요해졌으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대통령 역할을, 재무부가 의회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폭스홀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폴 디트리히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이 의회를 숏(매도)할 수 있다면 최고의 투자가 될 것"이라며 경제위기 속에서 의회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음을 꼬집은 바 있다. 포브스는 미국 부채문제 해법을 일례로 들었다. 미국에서 국가 부채와 일자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 처방은 부채한도를 올해 다시 상향조정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걸려있는 올해 부채 문제는 대표적인 정쟁 사항 중 하나다. 때문에 의회가 추가 부채한도 상향조정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의회에 출석해 자세한 설명도 없이 경제에 문제가 일으킬 것이라고 한 마디만 던지면 국회의원들은 부채 한도를 상향조정할 것이라고 포브스는 예상했다. 결국 부채한도 상향조정은 의원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지만 그들은 점점 이러한 문제들에 관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게 포브스의 진단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론 폴 텍사스 하원의원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다. 1992년 미 대선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쳐 당시 조지 부시 현직 대통령을 누르고 제 4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폴은 올해 뉴햄프셔 선거유세 중 클린턴을 흉내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는 "바보야, 문제는 통화정책이야."이라며 감히(?) 재무부와 FRB를 건드렸다. 그 결과 그는 공화당 경선에서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 하며 현재 남은 공화당 4명의 대선 후보 중 꼴찌를 기록 중이다. 부채위기로 고전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최고 권력이 차례차례 경제통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스의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는 전 ECB 부총재 출신이다. 파파데모스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66%로 전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보다 훨씬 높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는 전 재무장관 출신이다. 그 역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재무장관 출신이다. 그 역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ECB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프랑스 재무장관들을 신임 총재로 받아들여 글로벌 경제 문제 해결에 매진하고 있다.이런 추세는 신흥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두부리 수바라오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했다. 일부 시장 관계자들은 의회가 재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수바라오 총재가 마지막으로 정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바라오 총재는 프라티바 파틸 인도 대통령은 물론 만모한 싱 총리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포브스는 지적했다.포브스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감안해볼 때 결국 은행가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박병희 기자 nu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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