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영화

“소개할 영화가 있을까요? 지난해에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아서...” 이승환은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요즘 10대들은 자신을 못 알아본다고도 했다. 2010년, 그가 열었던 연말 공연은 “내용도 좋고 목 상태도 좋았”지만 공연은 기대만큼 되지 않았고, 이승환은 실의에 빠져 보냈다. 몇 년에 한 번씩 음반을 내고, 1년에 몇 차례 공연을 하고, 연말에는 반드시 공연을 하는 남자. 이승환에게 공연의 실패는 인생의 위기나 다름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연말 공연이 끝난 후 하루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정신적 여유가 없어 AV(Audio & Visual) 마니아인 그가 영화를 볼 수 없었다. 누군가는 너무 민감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환은 음악과 공연이 곧 인생이었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더 나은 공연을 위해 몸을 만들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공연을 만들어가기 위해 일상생활에서도 늘 감각을 열어왔다. 늘 인생을 걸고 노래하는 사람에게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실패란 ‘바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이승환은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그 시간들을 극복해나갔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옷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피규어는 모으지 않았지만 대신 ‘지구’와 ‘달’이라 이름 붙인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공연을 준비했다. 20여 년 전 데뷔 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공연은 그에게 다시 움직일 힘을 줬다. 공연 준비를 하며 관객의 ‘기’를 받았고, 3D 영상 등 새로운 시도를 하며 열정을 되찾았다. 오디션 프로그램 MBC <위대한 탄생 2>에 출연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자신에 대해 더 알려야겠다는 의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멘토가 된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책임감에 멘티들과 대화하며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의 재미를 배워가고 있다. 이승환은 여전히 노래하고, 공연하고,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직접 가르치는” 경험을 하며 새롭게 세상과 만나고 있다. 그래서 변하지 않은듯, 그러나 늘 천천히 성장해가는 이승환에게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영화’를 골라달라고 물었다.<hr/>
1. <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2001년 | 스티븐 스필버그“개인적으로 로봇에 대한 로망이 좀 있어요. 7집 < Egg >에서 ‘잘못’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버려진 로봇의 이야기를 다뤘구요. 희생하는 로봇의 이야기에 끌리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에이 아이>는 정말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생각하구요. 개봉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안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에게는 너무 처절하고 슬픈 영화였어요.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는 거의 신내림 받은 거 같았구요.”이승환의 설명처럼 개봉 당시에는 작품에 대한 반응이 엇갈렸던 작품. 특히 갑자기 이야기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결말로 인해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티븐 스필버그의 또 한 편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특유의 모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만나 가장 슬프고, 가장 동화적인 SF가 탄생했다.
2. <색, 계> (Lust, Caution)2007년 | 이안“이런 영화 보면 여자친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이 영화를 보고서야 탕웨이가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걸 알게 됐어요. 잔잔하게 흐르면서도 계속 마음에 남는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가 은근히 서사적인 것도 좋아요. 꽤 오랜 시간에 걸친 두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의 요소들을 골고루 갖춘 거 같아요.”영화를 볼 때는 누구나 량차오웨이(양조위)와 탕웨이의 노출 연기에 어떤 기대를 품고 본다. 하지만 보고 나면 어디에도 마음 붙일 수 없는 사람들의 쓸쓸함에 마음이 휑해진다. 혼란의 시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접근하는 여자. 하지만 유혹하는 여자와 유혹당하는 남자 모두 타인의 시선을 피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작은 침대뿐이라는 슬픈 진실을 알게 된다.
3. <잭애스 3.5>2011년 | 제프 트레마인“요즘 가장 깔깔거리면서 본 영화에요. “<잭 애스> 시리즈 중 최고!” 이러면서 봤어요. 하하. 너무 엽기적인가? 그런데 이게 저인 거 같아요. 로봇(<에이 아이>)과 욕정(<색, 계>)과 엽기(<잭애스 3.5>).” 네이버 영화 검색에서 보면 ‘다큐멘터리’로 분류돼 있다. 출연자들이 온갖 더럽고, 폭력적이고, 위험한 행동들을 실제로 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내용들을 참아낼 비위만 있다면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웃기에는 좋은 작품들이다.
4. <개 같은 내 인생> (My Life As A Dog)1987년 | 라세 할스트롬“제가 예전에 제일 많이 본 영화에요. 성장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잔잔하면서 우울한 느낌이 있어서 더 좋아요. 나이 들수록 곱씹게 되는 부분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원래는 로맨틱코미디를 되게 좋아하는데, 요즘은 약간 식상해진 감이 있어요. 반대로 어렸을 때는 “저 영화 뭐가 좋아?” 했던 작품들이 이제는 마음에 와 닿기도 하구요. 그런 점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와 닿는 영화에요.”그 유명한 제목과 함께 성장영화의 상징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 어른이 보기에 12살의 나이는 아무 고민 없이 좋을 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와 떨어져 사는 소년 잉마르에게는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지는 법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시절일 수도 있다. 영화 속 소년의 우울함과 성숙의 과정은 발표 후 한국의 수많은 성장영화에 영감을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스타 워즈> (Star Wars)1978년 | 조지 루카스“작년에 조지 루카스가 <스타 워즈>를 전부 블루레이로 냈잖아요. 그 이유가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해서 내 걸 기록으로 남겨야 해서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후에 농담이라고는 했지만 저는 왠지 그게 믿겨져요. 하하. 그래도 올해 망하지는 않고 3년은 버티지 않을까 싶어서 2015년쯤이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하하.”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조지 루카스는 <스타 워즈>의 또 새로운 버전을 만들지 않을까. 조지 루카스는 <스타 워즈>를 DVD와 블루레이 등 매체를 옮길 때마다 새롭게 보정한 버전들을 내놓는다. 이쯤 되면 조지 루카스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스타 워즈> 속에 묘사된 은하계의 역사를 정확하게 고증하고 재현하려는 역사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살던 은하계가 멸망한 뒤 지구로 온 것은 아닐까.<hr/>
“60까지는 지금처럼 충분히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40대 중반의 나이. 친했던 친구들은 가장의 인생을 살고, 재테크를 화제로 올린다. 하지만 이승환은 여전히 인디 밴드들의 공연에 참여하고, 새로운 옷에 관심을 가지며, 무대 위에서 영원한 현역이길 바란다. 언제나 자신답게 살기 바라는 영원한 청년의 꿈. 이젠 누군가의 멘토가 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달려간다. 자신의 무대, 자신의 꿈,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취재팀 글. 강명석 기자 two@ⓒ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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