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blockquote">2007년 8월 시작된 여행은 2012년 2월 26일 막을 내렸다. 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이하 ‘1박 2일’)이 기나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아쉽게 떠난 이도, 새롭게 합류한 이도 있었지만 때로는 제 7의 멤버, 혹은 제 6의 멤버가 되어 카메라 안팎에서 “4인 가족을 한 밥상에 앉힐 수 있는”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았던 나영석 PD는 언제나 ‘1박 2일’과 함께 있었다. 전국 산과 바다와 마을과 장터에서 수도 없이 멤버들과 ‘밀당’하고 협상하며 단호하게 “땡!”과 “안됩니다!”를 외치며 5년이 넘는 시간을 달려 온 나영석 PD를 <10 아시아>가 만났다. 멤버들에게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질질 짜고 그러지 말자”고 말했다던 ‘나요미’의 눈이 ‘1박 2일’의 지난 시간을 돌이킬 때마다 종종 그렁그렁해졌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모르는 척 해 주도록 하자.
돌이켜보면 이렇게 파란만장한 리얼 버라이어티도 없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지난해 9월의 강호동 하차가 제일 큰 타격이었을 텐데. 나영석 : 굉장히 난감했다. 그동안은 모아 놓고 아무 거라도 시키면 뭐라도 나올 거라는 관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 메인 MC가 없으면 그게 옅어지니까. 못 믿겠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그러면 제작진으로서는 보험을 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험이라는 건, 방송이 80분간 계속되는 동안 비슷하게 꽉 찬 밀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메인 MC가 없으면 그게 힘들어지니까 기획으로 커버해야 한다는 거다. 멤버들 외에 장이든 음식이든 어선이든 다양한 볼거리를 채워 넣어 재미를 줘야 했다. 그래서 ‘5일장 특집’을 하게 됐는데, 원래대로 다섯 명이 같은 장소에 가서 찍으면 다섯 시간짜리 촬영분이 나오는 걸 각자 다섯 군데로 찢어져서 다섯 시간씩 찍으면 스물다섯 시간짜리 촬영분이 나오게 했다. 물론 방송 시간은 똑같으니까 그럴 때 좋은 점은 밀도가 높아지는 거지만 연기자는 지친다. 게다가 자기가 다섯 시간 죽도록 힘들게 찍어왔는데 다른 사람들 방송분과 섞어 내면 방송엔 요만큼 나간다는 스트레스도 연기자에겐 당연히 있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은 단순히 연기자가 아니라 ‘1박 2일’의 팀원으로서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 스스로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다. 왜 제작진이 이런 진행을 하는지 이해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H3>“우리를 증명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H3>
결과적으로 잘 수습된 것 같지만 당시 제작진들은 앞이 캄캄했을 것 같다. 나영석 : 매일 ‘어디 갈까, 뭐 할까’ 하는 주제만 가지고 회의를 하다가, 그런 일이 생기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시 생각해야 하니까. 특히 강호동 씨 하차 후는 민감한 상황이었던 게, 예전처럼 가능성만 믿고 그냥 맡겼다가 잘 안 풀리면 남은 다섯 명 연기자들이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었을 거다. 그럼 그걸 복구하는 데 또 한 달은 걸린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어, 뭘 해도 잘 되네?’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가능하면 제일 잘 하고 제일 웃길 수 있는 걸로 녹화를 준비해가야 했다. 그래야 다음 녹화 때도 힘을 받으니까. 그 전에도 기획력이 중요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유재석이나 강호동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나?’ 생각하는 것처럼, 강호동이 없어도 ‘1박 2일’이라는 포맷과 기획의 힘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나영석 : 사실 강호동 씨가 부재했던 그 상황은 두 가지로 다가왔다. 일단 이 사람이 사라져서 너무 아쉽다, 그런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우린 괜찮고 아무 문제없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즉 강호동의 공백이 얼마나 큰 건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 있다면 우린 끄떡없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또 하나 있는데 결국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방송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래서 그 때 무너지면 “그냥 연예인의 힘으로 버텨오던 프로인 거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남아 있는 연기자들과 제작진에게도 상처가 되니까 이를 악물고 만들었다. 우리를 증명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1박 2일’ 자체가 남자들끼리 우애를 나누는 가족적 정서가 강했는데 강호동의 하차는 그냥 MC 한 명이 아니라 ‘맏형’이 빠졌다는 면에서 그 부분을 아예 무시하고 갈 수는 없지 않았나. 나영석 :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5일장 돌아다니며 방송 분량을 뽑는 보험을 들었고, 다 같이 모여서 5인 체제의 합을 봤다. 그래서 분량이나 재미가 괜찮게 나온 걸 보니 앞서 말한 두 개를 다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강호동 씨에 대한 그리움이나 형의 부재 상황에서 일어나는 다섯 명의 반응을 보고 싶으면 밤에 하면 됐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거기서 “형, 너무 보고 싶다” 하는 얘기들로 인해 생겨날 대중의 관심 같은 게, 당시 잠정 은퇴한 강호동 씨에겐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멤버들은 자기 전에 누워서 “호동이 형 없으니까 보고 싶다”는 얘기도 많이 했지만 그런 부분은 편집했다. 뭐가 강호동 씨에게 도움이 될까 선택을 해야 했고, 당시로서 그게 강호동 씨에게 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멤버들은 오랫동안 해왔으니까 맷집이 튼튼한 상황이었는데 엄태웅은 조금씩 드러나던 잠재력이 ‘5일장 특집’에서 눈에 띄게 드러났다. 나영석 : 원래 집안에 아빠나 큰형이 있으면 의지하게 되는 것처럼, 강호동 씨가 있을 때는 다들 마음 편하게 녹화장에 왔다. 게임 설명, 코너 설명할 때도 강호동 씨만 집중해서 듣고 전달하면 충분히 재미있게 나오고 협상에도 호동이 형을 내세우면 되니까. 엄태웅 씨는 워낙 나서는 성격이 아니고 중간에 들어온 자신이 나서면 보기 안 좋을 수도 있다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런데 큰형이 빠지면서 다들 ‘내가 뭐라도 안 하면 자칫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제작진도 이제는 각각 한 명의 능력을 더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 같이 모였을 때 각각을 살릴 수 있는 미션을 준비한 거다. 은지원, 이수근 씨는 워낙 퀴즈 같은 걸로 많이 부각됐고 김종민 씨도 사실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이 사람이 웃길 수 있는 가장 특화된 부분으로 사극 대사 읽는 걸 시켰고 엄태웅 씨에게는 ‘1분 토론’을 맡겼다. 그 날 녹화는 정말 힘들게 준비했다. 여기서 누가 잘 안 살면 그 다음에 또 어떻게 살려보고,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만들었다. (웃음) <H3>“마음만 있으면 옛날 멤버들이 모일 수 있을 것”</H3>
엄태웅이 뒤늦게 잠재력을 발휘했다면 원래 ‘1박 2일’의 주력 멤버였던 이수근과 이승기는 강호동의 부재상황에서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 방송의 흐름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나영석 : 혼자 하는 미션은 MC가 필요 없지만 다섯 명이 모여 있으면 누군가 진행을 해야만 한다. 그런 부담을 이수근, 이승기에게 반으로 나눠 지웠다. 히든 MC를 맡긴 거다. 사실 이승기 씨는 강호동 씨가 어시스트 해 줄 때 굉장히 골 잘 넣는 슈터였는데 자기가 어시스트도 해야 하다 보니 자기 골 수가 줄었다. 그것도 속 좁으면 못하는 일이다. 자기도 웃겨야 하고 자기 분량도 유지해야 되는데 남들 말에 한 마디라도 더 붙여주고 하는 게. 그런데 이수근, 이승기 씨가 그런 역할을 잘 해 줬다. 사실 이승기 씨한테 약간 미안했던 게, 웃기려고 어시스트 하다 보면 악역을 맡게 될 때가 있다. 강호동 씨는 원래 장난꾸러기, 못된 사람 이미지가 있으니까 누가 뭘 실수했을 때 윽박지르거나 해서 코믹한 상황을 만드는 데 아주 적합하다. 그런데 이승기 씨도 진행을 하다 보면 김종민 씨가 버벅거리면 놀려야 하고 엄태웅에게 “아, 이 형 왜 그래” 같은 말이라도 해서 상황을 살려야 했다. 우리한테는 그저 귀여운 막내인데 그런 역을 맡겼으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괜히 멀쩡한 애 이미지만 망가뜨리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다. 다행히 예상보다는 무난히 흘러온 것 같다. 사실 ‘1박 2일’ 종영 시기를 못 박은 다음에 강호동 하차라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데, 종영을 결정했을 때는 어떤 결말을 내고 싶었나. 나영석 : 6개월 후 종영한다는 결론은 예능국의 많은 분들이 내린 판단에 나도 동의를 했던 거고, 그 6개월이란 시간은 후속 팀이 새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런칭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기간이었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연기자들의 인생에 물론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족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김C가 나갈 때 그런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그 분이 굉장히 솔직히 “나는 음악이 하고 싶고 베를린에 가고 싶어.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라고 얘기하셨을 때, 이 사람이 빠지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직감은 있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인생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나. 그래서 요즘엔 예능에 시즌제 같은 것도 있고 많은 분들이 ‘1박 2일’을 사랑해 주시니까 한 번쯤 휴지기를 갖고 각자 하고 싶은 활동들을 하다가 다시 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결과적으로는 종영이 아니게 되었지만. 이제 최재형 PD가 자신의 색깔로 새로운 ‘1박 2일’을 만들 텐데, 언젠가는 내가 되든 다른 사람이 되든 또 옛날 멤버들이 모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외국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있으면 또 만날 수 있겠지. 먼 훗날 리얼 버라이어티의 역사를 정리한다면 ‘1박 2일’이 중요한 장을 차지할 텐데, 예능 PD로서 스스로에게 ‘1박 2일’은 어떤 존재인가. 나영석 :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가 생기면서 MBC <무한도전>, ‘1박 2일’, 그리고 몇몇 프로그램이 더 나왔는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둘만 남았다. 우리가 여행이라는 소재를 택했듯 다양한 소재로 많이 파생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문을 닫고 서바이벌 오디션 바람이 불면서 순식간에 장르가 옮겨갔다. 물론 나도 서바이벌 오디션이나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맛집 비장의 소스 같은 노하우나 비밀 같은 걸 얻었으니 앞으로도 그런 걸 잘 사용해서 뭔가 하고 싶다. 약간은 의무감도 있다. 후배들과 같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전수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예전에는 그냥 프로그램의 PD 였다면 ‘1박 2일’을 통해 ‘나요미’라는 캐릭터도 얻었고 나영석이란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후속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나영석 : 관심 받아서 고맙고 비교 대상이 되니까 부담스럽다. 하지만 ‘1박 2일’을 하며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가능하면 좋은 면만 보고 그걸 부각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뭘 하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누군가가 보면 큰 복이 아니겠나. 그리고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다음 프로그램이 망하면, 재미없어서 망한 거지 관심 때문에 망한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지금 정도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높은 관심을 받는 게 개인에게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삐끗하면 큰 단점이 되겠지만, 그래봐야 욕먹는 건데. (웃음) 하지만 욕먹으면 상처받게 마련인데. 나영석 : 일하다 보면 욕도 먹고 칭찬도 받는 거니까, 5년 반 동안 익숙해진 것도 있고. 하지만 사실 익숙해진다는 말은 허세다. 솔직히 눈치 보인다. 신경 쓰이고. 익숙해지는 게 맞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쉽게 익숙해지는 거면 그 많은 연예인들이 맨날 상처받을 리는 없겠지. 나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한쪽 발 정도는 걸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그렇기 때문에 평에 대해 신경 쓴다. 다만 가능하면 욕 안 먹고 칭찬받으려 노력하고,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 과정에서 연기자들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게 됐을 것 같다. 나영석 : 굉장히 그렇다. 사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덕장(德將)이나 그런 게 아니다. 원래는 연기자들과 극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안 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회식하고 술 마시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는 것보다 PD는 프로그램으로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1, 2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본의 아니게 그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연기자나 PD나 스태프나, 누구나 똑같이 외로운 사람들이고 이 일을 함으로써 달래지지 않는 인간적인 욕구 같은 게 있다. 그걸 서로 조금씩 나누면서 일하면 좋았을 텐데 내가 그걸 모르고 꽁꽁 얽매고만 있었다는 게, 서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H3>“리얼 버라이어티, 결국은 100% 사람 장사”</H3>
그런 걸 배웠다는 게 PD로서 플러스가 됐나?나영석 : 무조건 플러스다. 나는 그런 면이 약하기도 했지만 실은 일부러라도 안 하는 편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연기자들과 전화통화 할 시간이 있으면 편집을 한 번 더 손보겠다, 그게 그들에게도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지난 1, 2년 사이 배운 것 같다. 프로그램 한 번 더 잘 되고 안 되고 보다 그 사람 말을 진심으로 듣고 이해해주느냐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노하우를 얻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1박 2일’이 잘 맞아떨어진 면이 있다면. 나영석 :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적 속성이 특히 그렇겠지만, 결국은 100% 사람 장사다. 여러 멤버들의 성향, 그들이 원하는 바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춰지는지가 중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성향과 제작진이 추구하는 바의 합이 잘 맞아야 굴러가는 건데 ‘1박 2일’을 하면서 발견한 건 내가 사람들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멤버들이라서 좋아하는 건지 운 좋게 성향이 잘 맞아서 좋았던 건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방향이 일치되어갈 때 제일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나영석 : ‘5일장 특집’ 때 내가 이승기 씨를 따라갔는데 구례장에서 2010년 봄에 하룻밤 묵었던 곡성군 어느 집 이장님과 사모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 때 우린 짜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누가 아는 척을 하길래 그냥 촬영하고 있으면 반가워하시는 많은 분들 중 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승기 씨가 “어, 어?”하더니 맨발로 뛰어 내려가 인사를 하는 거다. 나도 그제야 생각이 났다. 같이 식사 하고 인사드리고 차로 돌아왔을 때 이승기 씨가 “감독님, 대~박!”이라며 좋아했다. 사실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왔겠나. 강호동 씨가 없는 첫 녹화인데 각자 분량을 잘 뽑아야 방송이 산다는 생각, 게다가 자기가 그래도 ‘1박 2일’에서 잘 나가는 스타니까 뭐라도 더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텐데 그게 ‘1박 2일’에서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발현이 된 거다. 나로서는 기계적으로 연출자 입장에서 보면 인연, 아름다운 거 물론 좋지만 일단 ‘아싸!’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싸, 방송 분량 뽑았다’와 ‘이 그림 너무 좋다’는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이승기 씨가 그 분을 알아본 것도 그 분이 그냥 장에 오셨다가 격의 없이 “승기야”하고 불러주신 것도, PD 입장에서도 눈물 나고 단순히 ‘1박 2일’을 좋아하는 한 사람 입장에서도 눈물 났다. 이승기도 마찬가지다. 연기자로서 ‘감독님, 방송분량 뽑았어요’와 ‘세상에, 이장님을 여기서 만났어요. 너무 즐거워요’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거다. 즉 이승기 씨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굉장히 유능한 요원임과 동시에 ‘1박 2일’이 추구하는 정서나 가치와도 호응하고 있는 좋은 청년이기도 하다. ‘1박 2일’은 그 두 가지가 같이 가야만 했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힘들어진다. 그게 맞아떨어지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프로그램이 잘 되는 거다. 카메라 앞에 드러나는 연기자 외에도 보이지 않는 데서 고생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땡스 투’를 붙여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나영석 : 진행팀, 말 그대로 방송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 족구 해야 되는데 눈이 왔으면 눈도 치우고, 동네에서 물건도 빌려오고, 사람들 몰려오면 막고. 같은 일 해도 덜 고생하고 같은 돈 받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1박 2일’이 좋고 정이 들어서 계속 같이 온 거다. 그런데 얼마 전 메인작가인 이우정 작가가 숙소 구석방에서 자다가 들은 얘기다. 진행팀 친구들이 너무 추우니까 아무 방이나 들어와 아침 식사를 하는데 그 중 진행팀에서 FD로 뽑혀 간 후배에게 진행팀 3, 4년차인 베테랑 선배가 “이제 좀 할만 하니? 뭐 좀 알겠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신참 FD가 “한 달 정도 해 봤더니 감이 좀 잡히는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이 베테랑이 “‘1박 2일’은 네가 한 달 한다고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야. 나는 한 2년 했을 때 간신히 감을 잡았어” 라고 하면서 그동안 자기의 노하우를 쭈욱 얘기해주더라는 거다. “스케치북이 없을 땐 란주 누나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고, 주차가 문제일 땐 어느 기사님께 말씀드리면 되고...” 사실 우리는 지시 내리는 입장이니까 뭘 하라고 하면 어떻게든 이뤄졌겠지 할 뿐, 그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자기들만의 메커니즘과 로드맵,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던 거다. 작가가 “우린 아직 멀었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하더라. 그러다 한동안 또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진행팀 친구들이 녹화 끝나자마자 나이트에 다녀왔다는 거다. 알고 보니 이수근 씨가 봉투에 백만 원을 넣어 주면서 “너희들 너무 고생하는데 이걸로 신나게 놀고 와라” 그랬다는 거다. 그래서 나만 무심하지, 누가 어디서 고생하고 힘든지는 다 보이는 거구나 생각했다.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된 일을 도맡아 준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인터뷰. 최지은 five@10 아시아 인터뷰. 위근우 기자 eight@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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