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한마디로 참 나쁜 집단이다. 과도한 이익을 챙겨 성장과실을 독식하는 것은 기본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집단에 쉴 틈도 안 주고 몰아붙여 결국 항복을 받아 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 등의 불법도 개의치 않는다. 바로 2012년 대한민국 사회가 보는 '재벌'의 한 단면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이달 초 발표한 '기업호감도지수'에서도 이런 여론은 그대로 감지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이 느끼는 기업호감도지수는 51.2점이었다. 이는 2010년 54점 보다도 2.8점이 줄어든 결과다. 최근 1년 사이 반재벌ㆍ반기업정서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재벌개혁의 여론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이같은 재벌개혁 여론은 때마침 선거정국과 만나면서 더욱 거세지는 모습이다. 정치권은 벌써 4월 총선 공약으로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부활, 순환출자제 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 재벌해체 등의 각종 재벌개혁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규제안과 관련 실효성에 한계가 있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민심'의 방향에 따라 먼저 강도 높은 규제책부터 내놓고 보자는 식인 듯하다.물론 재벌개혁이 불필요하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어떤 효과가 날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우선 '만들고 보자'는 식은 피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다.정치권이 재벌개혁의 카드로 꺼내 든 출총제 부활만 놓고 보자. 출총제는 순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에 대한 출자 한도를 순자산의 40%까지로 제한하는 제도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1987년 처음 도입됐다. 2009년 3월 폐지된 출총제를 부활시키자고 하는 근거는 폐지 당시 479개였던 10대그룹의 계열사가 현재 629개로 늘어났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재벌이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10대 그룹의 계열사 수가 증가했다는 통계 자체만으로도 중소ㆍ영세상인의 영역까지 무분별하게 진출하고 있다는 식의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그야말로 정치권의 입맛에 딱 떨어지는 통계인 셈이다. 하지만 출총제가 풀린 후 새로 생긴 계열사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출총제 폐지 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LED 등 16개 계열사가 늘어난 삼성그룹만 보더라도 소위 '골목상권'과는 거리가 멀다. 신설된 계열사 대부분이 중소기업의 참여가 어려운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첨단 업종이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여론에 휩쓸려 무조건 내놓은 규제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으레 선거철이면, 경제가 어려워지면 내놓는 늘 그런 식의 재벌개혁 안이라면 하나 마나다. 이은정 기자 mybang2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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