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단축하여 2011년까지 끝내겠습니다' 모 고속도로에 걸려 있던 안내문이다. 원래는 2012년 12월이 개통예정인데, 1년이나 앞당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큼지막하게 꽤 여러 곳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들이 해냈나 보다. 실제로 1년을 앞당겨 지난 달 개통식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발표 내용을 보니 조기 개통한 장점이 아주 많았다. 고질적인 교통 혼잡 문제를 해소해 수도권 물류비용이 연간 622억 원 절감되고, 1만 1000t의 탄소 배출량 저감 효과가 있을 거란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대단한 쾌거다. 그런데, 단축 안내문을 보며 늘 의문이었다. 과연 1년이나 앞당기는 것이 좋은 것일까? 무리하게 단축해서 혹여 부실 공사라도 되면 어쩌나? 부실 공사의 아픔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다. 걱정이 앞섰다. 아니면, 2007년 10월에 착공을 했는데 2008년부터 단축 계획을 세웠다니 애초 계획을 잘 못 세운 건 아닐까? 그럼 잘못된 계획을 부끄러워 해야지 자랑스럽게 떠 벌일 일은 아닐텐데... 납기 단축은 한국 건설회사의 특기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납기 단축이 칭찬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기는 해외에 나가면 더 두드러진다. 동남아시아의 한 대형 공사에서 일본 건설사와 똑같이 시작했지만 훨씬 더 빨리 끝내서 국위선양을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불굴의 의지로 밤낮없이 일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만든 성과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게을러 터졌거나(?)', '야근 특근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외국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우리 민족의 근면 성실함을 자랑한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 모 대기업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과거 공장을 건설할 때, 80%의 공정율을 보이던 것을 애초 설계서와 달랐다는 이유 하나로 완전히 부수고 다시 시작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이 에피소드는 그 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했다는 '미담'으로 활용되지, 애초 계획된 설계대로 공사를 하지 않아서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반성'은 별로 없다. 모르긴 몰라도 그 대기업도 납기를 단축하고 빨리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다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납기 단축이 혁신적인 공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또 일찍 끝내서 비용을 아끼는 것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발주처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소연할 수도 있다. 누구 탓이든 '닥치고 납기 단축'의 조급함이 우리에게 있는 건 사실이다. 한미글로벌이란 회사가 있다. 건설사업관리(Construction Management)를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선진국의 합리적인 건설 방식을 최초로 한국에 도입한 회사다. 이 회사는 무리한 납기 단축을 가장 경계한다. 공법은 그대로 두면서 납기를 단축하면 결국 하자를 용인하고 날림으로 일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애초에 계획을 합리적으로 세웠다면 단축을 할 수가 없다. 또 해서도 안 된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잡는다. 아직도 합리적인 계획 보다는 일단 목표를 높게 잡고 나중에 안 되면 그만인 기업이 많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며 높은 목표를 가져가야 리더가 칭찬한다. 목표가 높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는 핀잔을 듣는다. 목표를 높여 잡을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무리를 한다. 잡아 놓은 목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납기 단축도 하지 말고, 초과 달성할 생각도 버리자.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검증해 보자. 합리적으로 세운 계획을 차근차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직 1월 초반이니 늦지 않았다.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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