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10년…대장암 4년…희망이 약이었다

<11·끝>'인간은 암보다 강하다' 조영순씨 극복기[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암은 내가 명을 다할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존재라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공존이죠. 그러니까 그냥 예전처럼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요."난소암과 10년째 '동거'중인 조영순(53)씨는 한눈에 봐도 건강했다. 그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머리에 두른 검은 스카프만이 폭풍 같던 지난 10년의 사연을 담담하게 담고 있는 듯했다.
◆절망의 나날들= 조 씨가 난소암 판정을 받은 건 2001년 일이다. 어느 날 밤 배가 너무 아파 병원을 찾았다. 설마 암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의 일인 것만 같던 암과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난소에 혹이 발견됐어요. 수술로 제거하고 집으로 왔죠. 제거한 혹을 가지고 조직검사를 했는데 설 연휴가 껴 열흘 가량 걸렸어요. 결과를 안 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하더군요. 신나서 짐을 챙기는데 '암'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왜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걸 숨겼냐고 원망했죠.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어요."난소암 2기였다. 대표적인 난치암으로 5년 생존율이 40%를 넘지 못한다. 당시 충격을 떠올린 조 씨는 딸 같은 기자 앞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냥 주저앉았어요. 움직일 힘도 없었죠. 팔 다리가 풀려 병원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였어요. '이렇게 죽는구나' 두렵고 원망스러워 모든 걸 거부했었죠."암이란 사실이 확인되자 의료진은 조 씨의 난소와 자궁을 모두 드러냈다. 대학생이던 큰 딸이 휴학까지 하며 곁을 지켰다. 수술 전후로 항암치료를 9번이나 받았다. 그 때 후유증으로 머리가 많이 빠졌고 조 씨는 지금도 어두운 스카프나 모자를 쓰고 다닌다.다행히 수술은 잘 됐지만 암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첫 수술 후 6년이 흐른 2007년, 암세포는 조 씨의 몸에 자신의 존재를 다시 드러냈다. 이번엔 대장암이었다.

조영순씨는 일주일에 한번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청계사를 찾아 봉사를 하고 있다. 동지(冬至)를 하루 앞둔 21일에는 지역 어르신을 위해 팥죽 나눔에 동참했다.

◆'희망의 끈'이 되었던 가족= 항암치료는 힘들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는' 항암제의 고통은 그에게 포기에 대한 유혹을 떠올리게 했다. 한밤에 몸이 저리거나 마비증상이 오면 몰래 집을 빠져나와 혼자 응급실을 찾았다. 정말 독하게 참아보자 다짐했다가도 너무 힘들어 치료를 거부한 적도 많았다."가족들이 저렇게 나를 위해 매달리는데, 나도 가족들에게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가족을 떠올리며 참았죠. 아이들 결혼도 봐야하고 나중에 손자도 돌봐줘야 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어요. "치료가 없는 날에는 집 근처 관악산을 찾았다. 일주일에 서 너 번씩 오르락내리락 했다. 산에 오르면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온이 오는 듯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서는 한라산 등반도 성공했다. 어쩌면 산이 날 살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운동밖에는 기댈 것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미친듯이' 산을 다녔다고 한다. 지난해부턴 불교 공부를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번 청계사를 찾아 봉사활동에도 참가하고 있다. 자신이 큰 어려움에 처해 보니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조 씨는 암과 싸우고 이기고 절망하고 타협하며 지난 10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휴전 상태인 '암과의 전쟁'이 사실상 '종전'으로 바뀔 희망에 부풀어 있다. 내년은 재발한 대장암이 5년째 되는 해다. 지난달 주치의가 "이제 1년만 지나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며 조 씨는 큰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제 막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몸이 아프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바깥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통을 해야 한다"며 "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 죽지는 않듯,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요즘에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해요. 사는 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이대로 10년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남편이 그러죠. '이 사람아, 당신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수 있어'라고. 하하. 두려워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마세요. 그렇게 암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싸우다보면 어느새 내 몸을 감싸던 두려움이란 놈이 희망으로 바뀌어 가는 신비한 순간을 만나게 될 거예요." 박혜정 기자 park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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