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이나 해열진통제를 약국이 아닌 슈퍼에서도 팔도록 하자는 논의의 본질은 국민의 편익 증진이다. 지금은 휴일이나 심야 시간대에 문을 연 약국이 거의 없다. 한밤중에 갑작스레 아이가 고열에 시달려도 약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안전성이 검증된 가정상비약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감기약 슈퍼 판매 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감기약 슈퍼 판매가 벽에 부딪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에서 감기약 슈퍼 판매를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물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대부분도 그제 열린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국회 통과는커녕 상임위 상정도 어려워 보인다. 정치권의 반대논리는 오남용 우려가 있고, 감기약과 해열진통제에는 중추신경계와 간 기능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독성이 있어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여야 의원들은 "슈퍼에서 약 사먹고 부작용이 생기면 어쩔 것이냐"며 마치 국민을 위하는 듯 큰소리를 치고 있다. 심지어 홍 대표는 "감기약에는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며 위협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약사회의 반대논리와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인가.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같은 약이 약국에서 팔리면 안전하고 슈퍼에서 팔리면 '마약'이 되고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믿으라는 얘긴가. 더구나 정치권 논리대로라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 일본 정부 등은 국민 건강에 눈을 감고 있다는 말 아닌가. 정치인들이 말끝마다 '국민을 위해서' 어쩌고저쩌고하지만 사실은 표를 의식해 약사들의 로비에 놀아나고 있다고 고백한 꼴이다.국민의 편익 측면에서 본다면 개정 여부는 논란이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는 국민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약은 특정 이익집단의 밥그릇 챙기기 대상이 아니다. 국회는 국민 편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국민의 바람을 거스르는 의원이 있다면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 내년 총선 때까지 약사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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