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예고 없는 대규모 정전 사태는 전력 당국의 허술한 위기대응 시스템이 빚은 참사다. 거짓 보고에 점검 시스템의 부재, 안이한 복무의식 등 비상시 대처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수요 예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위험 신호도 무시하고, 단전 예고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보고체계에도 맹점이 드러나는 등 총체적 부실이 낳은 인재다. 전력 당국이 한마디 예고도 없이 순환정전에 들어간 지난 15일 당시 예비전력은 24만㎾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직후 한국전력거래소가 148만㎾라 말한 건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전기 사용량이 조금만 증가했더라면 자칫 전국이 암흑으로 변하는 블랙아웃(blackout) 상황이 될 뻔했다.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식경제부는 사흘 후에야 그 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허위 보고를 한 전력거래소도 문제지만 그냥 넘어간 지경부는 더 문제다. 예비전력량이 맞는지, 비상 매뉴얼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등 점검 시스템을 작동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더구나 예비전력량 24만㎾도 진위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하니 지경부의 허술한 대처에 어이가 없다. 사전에 단전 예고가 가능했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다. 전력 과부하를 알리는 신호인 전력주파수가 오후 들어 떨어지는데도 전력거래소는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국민과 기업에 절전을 호소하거나 예고 단전을 할 시간 여유가 있었는데도 안이하게 넘어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직자 의식의 실종이다. 기상청의 폭염 예보를 흘려듣고 전력 수요와 공급을 잘못 계산해 발전기를 세운 것이 단적인 예다. 기강이 무너지고 지휘체계가 허술한 데는 비전문가인 인물들이 낙하산을 타고 전력 당국의 요직을 차지한 것도 한 원인이다. 시스템과 인사 모두에 두루 문제가 있다. 대형 전력사고는 안보 공백은 물론 교통, 통신, 의료, 금융 등 국가를 지탱하는 시스템 전반을 마비시킬수 있다. 앞으로 더 큰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전력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고 위기대응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등 완벽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이 물러나고 실무자 몇 명을 징계하는 것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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