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성곤 기자]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여야 정치인들 중 가장 신중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핵심을 짚는 간결 화법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정국을 뒤흔들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일축한 것과 18대 총선 공천학살 당시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2006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대전은요?" 발언도 빼놓을 수 없는 어록이다. 감정의 기복 없이 절제된 언어의 정치를 구사하던 박 전 대표가 7일 구설수에 올랐다. 사건은 박 전 대표가 이날 오후 인천 남동구 고용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벌어졌다. 박 전 대표를 취재하던 기자들은 안철수 돌풍 현상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박 전 대표는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질문은…"이라며 받아넘기다가 차기 지지율 역전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병 걸리셨어요?"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여기서는 정치 얘기는 그만하고 중요한 고용과 복지 얘기를 좀 하죠"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좀처럼 실언을 하지 않았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분명 말실수였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막말로 규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등 공세에 나섰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민생현안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민감한 정치적 질문이 이어지니 박 전 대표도 사람인 만큼 불편하지 않았겠느냐고 해명했다. 앞서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돌풍에 대해 "우리 정치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구구한 억측이 나돌고 있지만 여야 정치권은 박 전 대표의 실언이 5년 전 '추석 트라우마'와 연결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6년 10월 여야 잠룡들의 대선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1위 자리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치열하게 대결했다. 하지만 추석을 전후해 이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는 점차 벌어졌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는 여성보다 남성"이라는 여론까지 형성됐다. 이후 지지율 격차는 좀처럼 줄지 않았고 이는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약 5년 만이다. 현 정부 들어 단 한 번도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던 박 전 대표는 안철수 돌풍 탓에 첫 역전을 허용했다. 6일 CBS·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6%(안철수 43.2% vs 박근혜 40.6%), 뉴시스·모노리서치 조사에서는 1.9%(안철수 42.4% vs 박근혜 40.5%) 뒤졌다. 오차범위 이내이지만 철옹성과 같은 '박근혜 대세론'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안철수 돌풍'을 상상하기조차 싫은 5년 전 추석 때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다. 곧 추석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대이동 속에 명절 이후에는 전국 단위의 민심이 형성된다. 안철수 돌풍은 여의도 정치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추석 밥상의 최고 화두가 될 전망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돌풍에 밀린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여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성곤 기자 skzer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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