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울시내 어느 구청과 의미 있는 실험을 해보았다. 실험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마을을 계획해 보면 어떨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누구나 자기 동네가 편리하고 아름다우며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요새 많은 지자체에서는 주민참여가 강조되고, 주민자치학교니 시민참여대학이니 하는 주민참여 관련 교육들이 지자체나 시민단체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의 도시계획 과정에 주민참여라는 개념이 소개된 지 벌써 20여년 이상이 되었고, 주민참여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나 계획과정에로의 편입 시도가 꽤나 많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주민참여는 정말이지 어렵다. 특히 여러 가지 재산권 문제가 걸려 있게 마련인 도시계획 과정에서 선의의 주민참여를 기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날마다 골목길 주차 전쟁으로 골치를 앓는 우리 동네에 공영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네 사람들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그 주차장이 내 집 바로 옆이면 싫다. 집값이 떨어질 테니까. 항상 오가는 차들로 막히는 우리 동네, 새로운 도로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그 도로가 우리 아파트를 통과하는 순간 주민들은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친다. 집값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비슷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야말로 '낫 인 마이 백야드(Not In My Backyard)', 동네나 남의 땅에는 허용되지만 내 집 마당에 들어서서는 안 되는 것이 많다. 도시계획에서 주민참여는 여러 갈등과 이해관계를 오히려 꼬이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실 선진국에서는 주민참여라는 말보다는 시민참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시민과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인 주민을 구분하는 것이다. 참여라는 것은 권리와 의무를 함께 갖는 시민이란 개념에 더 어울리는 말이다. 우리는 서구의 시민참여라는 개념을 주민참여라고 번역해서 받아들였다. 주민과 시민의 구분이 불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실 서구의 시민이라는 개념은 왕정과 귀족 세력으로부터 싸워 얻은 것인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기가 없었다. 20세기 초 왕정이 무너지고 식민시대가 온 뒤 전쟁을 거쳤고 독재의 터널을 지나 민주화 시대가 왔다. 독재와 싸운 것은 분명 시민들이었지만 서구적 의미의 시민은 아니었고 이미 그 시절엔 주민과 시민의 구분이 불필요했던지도 모른다. 주민참여든 시민참여든 간에 지난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 내내 서울 시내 모 구청엔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30~70대의 동네 사람들 50여명이 몰려들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하여 열띤 작업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성도 오갔고 박수와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그 길고도 짧은 여덟 주가 지난 뒤 그들은 그들이 사는 동네의 청사진을 그려냈다. 그들은 숱한 토론과 양보를 거쳐 동네 공영 주차장으로서 적절한 곳을 찾아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담장을 허물어 정원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어떤 아저씨는 동네 사랑방을 제안했으며, 어떤 아주머니는 골목에 벽화를 그리기로 했고, 할머니 한 분은 온 동네 사람들이 작은 화분을 골목에 내놓자고 제안했다. 동네 사람들이 만들어낸 계획안에 감동을 받은 구청에서는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로 했고, 동네 사람들은 그들의 작지만 소중한 아이디어가 곧 실현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청사진을 만들고 나서 주민들은 그들이 계획한 동네의 청사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스스로 마을의 리더가 되기를 결심하고 동네로 돌아갔다. 이제 진짜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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