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기자
신주쿠역 개찰구 앞에 설치된 TV 화면. 도쿄전력이 일일 공급전력 총량과 현재 사용량을 전해주기 위해 설치한 것. 상단부터 사용율, 구체적인 사용량, 총공급량이 적혀있다.<br />
◆자판기 전원을 끄게 만든 창의적 실험=전력 사용량을 줄이도록 해보겠다는 일본인의 구상은 처절하면서도 기발하다. 후쿠시마 사태로 전력난이 심화되던 지난 4월, '자판기 왕국'인 일본의 한 20대 남성은 '한 달 동안 자판기만으로 생활하기'라는 독특한 체험에 돌입했다. 모든 생필품과 식료품을 자판기에서 조달해 한 달을 버텨보겠다는 복안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이 사례가 주목을 받은 건 지금까지 일본에서 자판기가 잡아먹는 전력량이 얼마나 막대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 정부는 도쿄 등 대도시에 '자판기 사용을 최대한 줄일 것'을 권고했다. 지난 11~13일 도쿄 시내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시내의 자판기 3대 중 1대, 경우에 따라 2대 중 1대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3.11 이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긴급지진속보일람' 서비스 어플리케이션 '유레쿠루 콜'. 이 어플리케이션은 일본 전역에서 발생한 지진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준다. 제일 아래 목록에 '2011년 6월10일 06시 03분 16초에 치바현 동북쪽에서 최대진도4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재난이 만든 상품 '지진 감지 애플리케이션'=대재앙을 맞은 일본인의 창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불안과 결핍은 곧장 '돈 되는 아이템'으로 발현됐다. 지난 10일 저녁 도쿄 신주쿠의 한 작은 식당을 채운 사람들. 이들 중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진 정보를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진 소식을 알린 건 '유레쿠루 콜'이라는 이름의 지진 경보 애플리케이션이다. 화면에는 '2011년 6월10일 6시 3분 16초에 치바현 동북쪽에서 최대진도4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식의 문구가 실시간으로 등록되고 있었다. 이날 식당에 있던 한국인 유학생 이민주(32ㆍ여ㆍ도쿄대 대학원)씨는 "3ㆍ11 사태 뒤 이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건수가 200만건을 훨씬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제 주변 사람들 중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은 모두 이 애플리케이션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전력난, 마케팅의 수단이 됐다=일본의 창의는 지하철역과 자판기, 스마트폰을 넘신주쿠 중심에 있는 전자상가 빅카메라(BIG CAMERA) 입구에 붙은 절전 광고판. '절전!'이라는 구호와 함께, 전력을 최대 78%까지 아낄 수 있는 주력상품 홍보문구가 적혀있다.<br />
어 전자상가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력난이 마케팅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이른바 절전마케팅이었다. 11일 오후 찾아간 도쿄 신주쿠의 유명 전자상가 '빅카메라(Big Camera)' 입구에 걸린 간판에는 '절전!'이라는 구호와 함께 주력 상품의 전력소모 감축 비율 등이 적힌 광고판이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 뿐만이 아니었다. 가전매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주변 벽은 전력을 50% 아낄 수 있는 LED TV 등 절전상품에 대한 홍보물, '절전생활응원'이라고 적힌 캠페인 포스터 등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구석으로 밀려났던 선풍기가 대표적인 절전상품으로 발돋움해 매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빅카메라의 주력 품목인 세탁기의 경우 거의 다 절전시스템이 갖춰진 상품이었다. 친환경 모드로 설정을 해놓으면 같은 양의 빨래라도 물이 더 적게 들고 통의 회전수도 줄어들어 전기를 아끼는 방식이다. 대표적 '전기도둑' 냉장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절전상품임을 알리는 홍보물이 덕지덕지 붙은 이 매장의 냉장고는 문을 열었다 닫았을 때 일시적으로 냉매가 많이 분출되고 보통 때에는 음식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냉매만 내뿜는 인기 절전상품이다. ◆"절전상담 받아보셨나요?"=이 매장에는 심지어 '절전상담카운터'까지 있었다. 물론 3ㆍ11사태 뒤에 생긴 장소다. 점원들은 이곳에서 '현재 사용중인 어느 제품을 어느 절전상품으로 바꿀 경우 장기적으로 얼마 정도 이득을 본다'는 식으로 컨설팅을 해 소비를 유도한다. 빅카메라 점원 나카야마 히로시(32)씨는 "사실 요즘은 우리 매장에서 파는 대부분의 전기제품이 절전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들도 당연한듯 절전상품에 먼저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도 전략적으로 그런 상품들을 배치해두고 절전 상품에 대한 홍보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절전상품들의 판매율은 3.11사태 이후 약 30%정도 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절전상품에 할인을 더 많이 적용해서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난을 역이용한 빅카메라의 창의는 곧장 돈과 연결되고 있었다.도쿄=김효진 기자 hjn2529@<ⓒ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