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이안나 PD “흥행보다 관객층 넓혔다는 게 좋다”

<div class="blockquote">영화 <써니>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 <쿵푸팬더2>,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등 헐리웃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일궈낸 성과라 더욱 눈에 띈다. <과속스캔들>로 전국 830만 관객을 모았던 강형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다시 한 번 홈런을 쏘아올렸다. 여기에는 또 한 명의 주역이 있다. <과속스캔들>에 이어 <써니>의 공동 기획과 제작을 맡은 이안나 프로듀서다. 강 감독과 대학 동기인 이안나 프로듀서는 두 편의 영화로 일약 ‘흥행 PD’ 대열에 올랐다. 영화를 한 편 완성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안다면 <과속스캔들>과 <써니>의 성공을 감독의 몫으로만 돌릴 수 없을 것이다. 이안나 프로듀서에게 <써니> 흥행의 비결을 물었다.
18일 <써니>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소감이 어떤가. 이안나 PD: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평일 오전 스코어는 1위다. 40~50대 여성 관객들이 오전에 단체로 관람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한 번은 오전에 극장이 있는 건물에 들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써니>를 보러 온 8명의 40대 후반 여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보자고 했는데 편하게 보고 싶어서 친구들과 왔다는 이야기였다. 영화 흥행보다 관객층을 넓혔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다. 강형철 감독과 이안나 PD, 두 사람이 서로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이안나 PD: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이 제일 좋다. 강형철 감독은 감독으로서 쉽게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내게 가능한지 늘 물어본다. ‘이렇게 하자’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도 될까’라고 묻는다. 그는 약속한 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날 믿어준다. 내가 안 된다는 말을 하면, 누가 와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믿어준다. 강 감독과 내가 촬영 전에 잘 맞추고 들어가니까 마찰이 별로 없다. 스태프들과도 호흡이 잘 맞다. 스케줄 때문에 안 맞아서 참여하지 못한 스태프들 빼면 대부분 <과속스캔들> 때 참여했던 분들이다. <H3>“흥행 코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다”</H3>

[과속스캔들](왼쪽)은 이안나 PD와 강형철 감독 모두에게 데뷔작이었으며 [써니] 역시 두 사람 모두에게 두 번째 영화다.

프로듀서로서 어떤 점을 잘 했다고 생각하나.이안나 PD: 강형철 감독이 내게 부탁하는 건, 연출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잘 한 부분이라면 그런 것 아닐까. 하나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다른 프로젝트에 다리를 걸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써니> 프로젝트의 시작은 언제였나.이안나 PD: <써니>의 초안은 강형철 감독이 내게 <과속스캔들> 시나리오를 처음 보여줬을 때부터 있었다. 여러 아이템 중 하나였다. 아마 2007년 5월쯤이었던 것 같다. 5장짜리 트리트먼트였다.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는 2010년 초였다. ‘장례식에서 춤을 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거기에 원래 있었던 ‘칠공주’ 이야기가 결합됐다. 여자 영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토일렛픽처스의 안병기 대표와 2009년부터 했다. 스릴러 장르의 남자 영화가 넘쳐날 때여서 여자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됐다는 생각이었다. 2009년 연말에 하기로 정하고 이듬해 초에 시나리오가 나왔다. 처음 볼 때부터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후반부가 아주 좋았다. 장례식 장면은 감독과 조금 생각이 달랐다. 나는 조금 더 판타지나 뮤지컬 같은 느낌이 났으면 했다. 강형철 감독과 두 작품을 함께하면서 그가 발전하는 게 보이던가.이안나 PD: 원래 영화 보도자료에 넣으려다 못 넣은 것 중에 스태프들이 보는 강 감독에 대한 한마디가 있었다. 뭘 쓸까 고민하는데 밤새 믹싱 작업을 하는 강 감독을 보며 ‘<과속스캔들>을 통해 감독이 된 사람이 이번엔 진짜 영화감독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워낙 실력이 있는 감독이라 영화 한 편 찍고 뭔가 확 늘었다고 느낀 것은 없었다. 강형철 감독의 특징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시나리오를 써서 현장에서도 다른 버전을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신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OK컷과 다른 버전을 찍어보자고 말할 정도다. <써니>를 기획하며 흥행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100억 원대 대작 영화도 아니고 톱스타가 나오는 영화도 아니었으니까. 이안나 PD: 어차피 통하는 사람은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프로듀서로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흥행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이런 영화가 하나쯤 나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컸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흥행 코드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들 아닌가. <써니>를 만들며 크게 흥행할 것이란 예상을 했나.이안나 PD: <과속스캔들> 때 바람은 강형철 감독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정도만 됐으면 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투자자를 위해 본전치기는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게 200~250만 명 정도니까 조금 욕심 부려서 300만 명만 들면 다음 영화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강 감독도 300만 명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실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100만 명이 안 됐다 해도 ‘개봉 시기가 안 좋아서 안 된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H3>“캐스팅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H3>
제작사를 차리지 않겠냐는 주위의 제안은 없었나.이안나 PD: 나보다는 강 감독을 데려가려는 시도가 많았다. 나는 안병기 대표와 관계를 다들 아니까 그런 건 별로 없었다. 토일렛픽처스에서 일하며 별 문제가 없었으니 나로서도 다른 데서 작업할 이유가 없었다. 의리나 도리를 떠나서 신생 제작사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겠나. 안 대표는 감독이기도 하면서 제작자로서 뛰어난 점들을 갖고 있다. 안병기 대표도 <과속스캔들>에 이어 <써니>까지 흥행에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어떤 부분이었나.이안나 PD: 주위에서는 안 대표에 대해 운이 좋다고 한다. 대표로서 투자자를 끌어오는 것도 있겠지만 돈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타이밍’이 있다. 현장에 잘 들르지는 않는데 한 방이 있다. 안 대표는 선배 감독이 현장에 가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장에 잘 가지 않는다. 배려하는 거다. 그러다 어쩌다 한번 현장에 들렀을 때 우리가 헷갈리는 부분을 바로 결정해준다. 타이밍이 있는 거다. <과속스캔들>을 만들 때는 투자자들의 뜻에 맞춘 부분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강 감독과 나를 믿고 맡겨 줬다. 안 대표 아래에서 일을 하면 기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 이상을 배운다. 대여섯 편을 해야 알 만한 것을 한두 편만 해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준다. 많은 걸 믿고 맡겨주니 당연히 책임감도 늘어난다. 직원도 아닌데 내겐 친정집 같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이안나 PD: 캐스팅에 대해선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 나이 또래 배우들 중에서는 톱배우가 없다. 이영애나 전도연을 캐스팅할 수도 없잖나. 배우 한 사람이 이끄는 영화도 아닌데 그런 배우들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성인 ‘써니’ 멤버들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를 한 명씩 캐스팅했다. 어린 친구들은 대부분 오디션을 통해 결정했다. 나미 역의 심은경만 미리 생각해뒀다. 4부작 드라마인 <경숙이, 경숙아버지>라는 드라마에서 심은경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강 감독도 심은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을 굳혔다. 박진주는 홍진희 씨가 진희 역을 한다고만 해준다면 바로 캐스팅할 생각이었다. <써니>는 시대를 재현함에 있어 미술과 음악의 효과적인 사용이 두드러진 영화였다. 이안나 PD: 미술은 장소 헌팅이 시작인데 최대한 세트에서 찍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미 집도 실제로 있는 집을 빌려서 찍었다. 딸 둘이 있는 가정집이었는데 여러 번 부탁을 해서 촬영장으로 쓸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가족분들을 호텔에서 머물게 해드리고 장소 대여비와 한 달 식비 등을 드렸다. 데모 장면을 찍은 합천 세트장은 공사비만 1억 원 정도가 들었다. ‘○데리아’도 1980년대 쓰던 타일을 어렵게 구해다가 붙인 것이다. 디테일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1980년대 잡지나 책을 구해서 참고했다. 미술감독이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준비를 많이 해서 보다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음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구상이 된 거라서 최대한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곡에 따라 국내 판권, 해외 판권이 따로 있어서 정확한 비용은 밝히기가 힘들다. 음악 등의 사용에 있어서 연대기적인 오차가 있다. 촬영할 때 기준을 둔 시점은 어떻게 되나이안나 PD: 춘화가 1968년생으로 나온다. 춘화가 18세 시절의 이야기니까 1985, 1986년쯤일 것이다. 영화적 설정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게 2~3가지 있긴 하다. <H3>“<써니>는 사회적 이슈가 아닌 개인적 의미의 영화”</H3>
일부 관객으로부터는 시대를 희화화했다는 비판도 받았다.이안나 PD: 사회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지만 주인공의 고등학생 시절에 중요한 건 첫사랑과 우정, 친구들과 의리 같은 것이었다. 어떤 이에겐 사회적 이슈가 중요하겠지만, 어떤 이에겐 우정과 의리가 중요할 수도 있다. <써니>는 사춘기를, ‘그날’에 대한 개인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시대를 희화한 것이라면 프로듀서로서 왜 안 말렸겠나. 나미 오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선가 조금 주워듣고 다른 데 가서 어설프게 아는 척하는 캐릭터를 그린 것이다. 감독판에는 성인이 된 오빠도 나올 것이다. 엔딩에 대한 반감도 있다.이안나 PD: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는? 시나리오 초고에는 선물을 더 많이 줬다. 강 감독에게 “이건 좀 오바 아냐”라고 하면서 줄였다. (웃음) 어차피 엔딩 장면은 판타지다. 우리는 ‘산타 신’이라고 불렀다. 춘화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자기 인생이 그것 외엔 없었다. 뒤늦게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다. 자기 욕심 부리면서 친구들을 다 찾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상태다. 복희처럼 어려운 친구가 있다면 돈이 있건 없건 도와주고 싶지 않겠나. 물론 엔딩에 대해 고민도 토론도 많이 했다.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뿌듯하고 유쾌한 마음이었으면 했다. 그건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들 중 하나다. <써니>가 평소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 40~50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이안나 PD: 단지 친구를 그리워하고 시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추억은 각자 다르지 않나. 그보다는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40대 여자 관객 입장에서는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라서 좋아하는 것 같다. 나를 찾게 하면서 희망과 웃음을 주는 영화인 것 같다. <써니>는 특별한 이슈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도 여름 극장가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제치고 한 달이 넘도록 1위를 달리고 있다. 어떤 이유인 것 같나.이안나 PD: 사회적인 의미의 영화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영화이기 때문 아닐까. 한 관객은 친구와 같이 보고 싶은데 자신은 서울에, 친구는 부산에 있어서 같은 시간에 따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 개인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도 ‘벼락스타’도 없이 장기 흥행할 수 있는 것 같다. 최근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힘이 커지면서 제작사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써니>는 국내 최대 배급사인 CJ E&M이 투자·배급한 작품이다. 현장에서는 어땠나.이안나 PD: 특혜를 받은 건진 모르겠지만 예산이나 캐스팅 등 <써니>를 제작하면서는 별로 간섭을 받지 않았다. 대기업 배급사가 거액의 돈을 미끼로 흥행 감독들을 빼가는 건 어렵지 않다. 강형철 감독에게도 제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토일렛픽처스의 조건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 계속 찍는 것 아니겠나. 투자사가 감독을 좌지우지하면서 제작에 참여해 자사 직원을 프로듀서로 앉히는 거라면 제작사와 프로듀서로선 좋을 게 없다. 그렇게 되면 안 될 것 같다. <써니> 감독판은 어떻게 달라지나.이안나 PD: 달라지는 게 많지는 않다. 첫 완성본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개봉을 위해 15세 이상 관람가로 바꿨다. 다시 원래 버전으로 만든 것이다. 감독판은 설명적인 부분이 더 들어가는 정도다. 10분 정도 분량이 늘어나는데 과거 시점보다는 현재 시점 이야기가 늘었다. 편집은 완료됐고 사운드 작업만 마치면 된다. 개봉 규모는 전혀 모른다. 흥행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써니>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선물 같은 의미다. 강형철 감독과 다음 영화를 만들 계획은 있나.이안나 PD: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다. 강 감독이 시나리오 쓰는 것을 힘들어 해서 다른 작가의 시나리오를 받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듯하다. 강 감독이 어서 다음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 강 감독이 다른 프로듀서가 기획한 작품을 한다면 내가 그 자리를 뺏고 싶진 않다. 10 아시아 글. 고경석 기자 kave@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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