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은행개혁 중간보고서에 대한 언론 비판
[아시아경제 박희준김영식 기자]영국 은행독립위원회(ICB)가 은행개혁안 중간보고서를 공개하자 언론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보고서 덕분에 금융위기를 초래한 은행들은 완전히 자유롭게 된 반면, 영국 정부와 납세자들은 최대 패자(big loser)가 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규제를 강화하면 회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겠다는 대형 은행들의 협박에 ICB가 굴복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ICB 중간보서, 투자은행 분리 빠져= ICB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중간보고서는 2008년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한 은행개혁안의 성격을 띠고 있다. 중간 보고서여서 최종 보고서는 오는 9월 나올 예정이지만, ICB가 개혁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어왔다. ICB는 보고서에서 우선, 바클레이스 등 대형은행들은 위험가중 자산에 대해 핵심자기자본비율(티어1비율)을 10%로 늘리도록 권고했다. 이는 ‘바젤 III’ 협약의 최소 티어1비율 7%보다 높다. 또 금융위기 재발에 대비해 중소기업 대출시스템과 개인 예금자보호 장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이는 지난 세계금융위기 당시 주요 은행들이 투자은행부문 부실화로 소매금융까지 경색됐던 전례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개혁안에 포함될 것으로 강력히 점쳐지던 투자금융 부문과 소매금융 부문의 분리 조항은 빠졌다. 보고서는 투자금융과 소매금융을 분리하는 대신, 소매금융 보호 차원에서 은행들이 손실에 대비해 중앙은행에 맡기는 지급준비예치금 비율을 높이고,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들이 필요한 경우, 은행의 손실 책임을 지는 조항 등을 삽입했다.은행 소매사업은 금융그룹 산하 별도 자회사를 통해 운영하며, 해당 자회사는 자체 자기자본비율을 준수하되 초과 자본은 그룹의 다른 금융행위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ICB는 또 은행도산시 예금자 요구를 무담보 채권자보다 선순위에 두도록 제안했다.ICB는 아울러 영국 소매은행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고객이 은행을 더 쉽게 비용을 덜 들이면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보고서는 금융 위기 당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로이즈뱅킹그룹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600개 지점의 매각 작업은 기존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권고도 담았다.◆ICB “중도를 택했다”=영국 정부는 영국 은행산업의 안정성을 개선하고, 경쟁을 높이기 위해 난 해 7월 ICB를 설치하고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 수석이코노미스트와 공정거래청장을 역임한 존 빅커스 경을 위원장으로 임명, 은행 구조조정 방안을 연구해왔다.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나 공적자금 관련 프로그램을 이용한 바클레이스 등 영국 주요 대형은행들은 ICB가 투자은행 부문의 분리와 금융권 지분보유 제한 등 대수술을 권고할 것을 예상했다.2009년 11월 앨리스티테어 달링 당시 재무장관은 BBC에 출연,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빅3 은행들의 자산은 영국 은행 시장 신규진입자들이 보유해야 한다”면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의 지점이나 특정기관들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세전수익의 80% 가까이를 투자은행 부문에서 내는 바클레이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은 투자부문과 소매부문을 분리할 경우 타격이 매우 클 것으로 예측하고 새로운 규칙이 지나치게 징벌적이어서 다른 경쟁사들에게 불리하도록 할 경우 본사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협박’하고 로비를 벌이는 양동작전을 폈다. 그러나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완화된 결과가 나오자 영국 대형은행들은 안도했다. 은행권은 금융권 구조조정 조치에 최대 50억 파운드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해 왔으나 이 역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 때문에 ICB의 개혁안은 은행 자기자본비율 강화외에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 로펌 클리포드찬스의 사이먼 글리슨 매니징파트너는 “ICB 권고안은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꾸준히 제기됐던 은행 투자금융을 소매금융분야와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ICB는 “권고안이 투자부문과 은행분리라는 근본개혁과 자기자본비율 강화에 의존하는 것의 중간 지역(middle ground)를 선택했다”고 자평했다. ◆英 언론 “공적 자금 투입은행 면죄부 줬다”=영국 언론들의 반응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인 매튜 린(Matthew Lynn)은 11일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위원회는 자본비율제고와 소매부문과 투자부문을 분리하는 것을 겨냥한 아무 상관도 없고, 복잡하며 실행하기 어려운 규칙들만 제시했다”고 비판했다.그는 특히 “사실상 은행은 완전히 자유로와졌다”면서 “영국 경제와 납세자만 패자가 됐다”고 단언했다.그는 “존 빅커스 위원장은 부여받은 임무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꼬집고,“새로운 규칙과 규제가 있겠지만 은행산업은 근본적으로 그대로이며 실제로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린은 영국은 거대 은행의 고향(home)이 된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라고 규정하고 이렇게 큰 은행을 둘 필요가 없다고 일갈했다.UBS AG의 3월29일자 자료에 따르면 바클레이스 은행의 자본은 대략 영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하다. 반면, JP모건체이스 앤 코는 미국 GDP의 24% 수준이다. 그는 영국이 이 정도 규모의 금융기관을 계속해야 하나고 물음을 던졌다. 이런 금융기관들이 파산하면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영국도 파산할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린은 이 물음에 ICB의 답은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ICB 권고조치로 많은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른 행성에 사는 것과 같고, 2008년 식의 금융위기를 막기에는 충분하다고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세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경쟁이 거의 없다는 것은 핵심쟁점이 아니었다. 신용경색의 결과 중 하나는 도산하는 은행 지원을 위한 합병이 영국내 저축 및 담보대출시장을 덜 개방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경쟁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아무도 영국 금융산업이 2008년 당시 경쟁을 하고 있었다고 믿지는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 애완견에게 담보대출을 해줬을 정도였다. 선수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더 책임감 있도록 하지는 못한다. 둘째 자본비율 상향조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물론 자본이 많다면 금융충격을 더 잘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신용경색으로 이끈 것은 복잡한 금융도구들(instruments)과 보너스 체계, 알지도 못하는 시장에 대한 무분별한 은행의 진출이었다. 자본이 많으면 리스크를 완화해주지만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셋째 아무도 은행부문의 제한(ring-fencing)을 믿지 않는다. 투자부문이 도산하면서 은행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조직을 만들 수 있기나 하는가라고 린은 반문했다.린은 빅커스 위원장이 대형 은행의 투자부문과 소매은행 부문을 분명히 분리하고, 소매부문은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보호를 받도록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투자은행 부문은 자체 자본을 조달하고, 자체 주주에게 책임을 져야만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복잡한 상품에 대해 리스크를 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들이 많은 돈을 벌면 좋다. 실패하더라도 그들만의 문제일 뿐이다.린은 “바클레이스나 HSBC가 이걸 싫어한다면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면서 “두 은행은 영국에게는 너무 큰 은행이다. 차라리 이들 없이 사는 게 더 낫다”고 단언했다.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필립 스티븐스도 ICB 자체 진단의 논리적 결과를 피했다고 질타했다. 그 역시 “소매부문과 투자은행부문의 정식분리가 필요하다”고 단언하고 “그것만이 영국의 필수산업을 보호하고 도박꾼들이 자기돈을 내걸도록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는 빅커스 위원장이 국익보다는 정치적 편의에 더 동조했다고 일갈했다. 경기침체기에 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우 침체를 초래할 수 있고, 은행 개혁을 강화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국익에 부합되지만 관련 장관들은 단기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데 ICB가 절묘한 타협책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스티븐스는 영국은행(BOE) 총재의 말을 인용,“영국은 너무 중요한 기관이서 도산시킬 수 없다는 ‘대중불사’(大重不死)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도 대마불사의 원리가 예외없이 적용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바클레이스는 밥 다이아몬드 CEO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했으며, 그는 또한 “금융위기에 대한 참회의 기간은 지났다”고 선언하고 직원들에게 위험을 더 감수할 것을 재촉하기도 했다.박희준 기자 jacklondon@김영식기자 gra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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