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정운찬 전 총리의)도덕관념은 제로였다…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 "(C기자는)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법정 서면증언 인용)장시간 실랑이 끝에 결국 성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관계 후에 깜짝 놀랐습니다. 신정아는 그것이 첫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정아씨가 지난 22일 출간한 문제작 '4001(사월의책 펴냄)'에서 내뱉은 말들은 이처럼 적나라하고 도발적이다. 당연히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기자들의 질문에 정 전 총리)됐어요.""(C기자)법적대응 하겠다""(변 전 정책실장)…" 법조계의 입장은 법적으로 굳이 걸고넘어지면 신씨가 곤란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추가 폭로에 따른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소송전을 택하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22일 열린 '4001'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신정아씨.
현행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같은 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떠나 남의 얘기를 함부로 못하게 한 이 조항에 따르면 신씨의 '고백'은 법리상 문제의 소지가 크다. 민사상 책임이 동반될 수도 있다. 강신업 엑스앤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얘기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 안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라며 "사실만을 그대로 얘기한 경우라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또 "C기자와 같이 이름을 머리글자(이니셜)로 처리해 익명을 보장하더라도 정황상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형법에도 예외는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얘기한 경우인데, 신씨의 고백이 이 범주에 들긴 어려워 보인다. 신씨의 책 '4001'을 출간한 출판사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가 23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신씨의 글은 항변이나 반론이 아닌 '자기고백'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듯이 책에 나온 이야기는 대부분 개인사일 뿐이라는 것이다.김정남 변호사는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공익에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지지해주는 경우에도 법적으로 공익성 여부를 따지는 게 어려운 데 사적인 토로나 다름없는 일기를 형식만 바꾼 에세이가 공익성을 확보하긴 힘들어 보인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는 충분하지만 신씨가 거론한 남자들이 사태를 소송전으로 끌고 갈 가능성을 높게 점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추가 폭로전 등 더 큰 출혈이 부메랑으로 '신정아의 남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들 대부분이 공인이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때문에 만약 검찰이 수사를 할 경우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이 과정에서 다른 의혹들이 불거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민사소송으로 가더라도 사실상 공문인 판결문이 공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응하자니 창피하고 대응하지 않자니 답답한 상황이 '남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출판가에 태풍을 몰고 온 신씨의 책은 출간 이틀만에 5만권이 출고돼 2만권이 팔렸다. 출판사가 추가로 4만권 인쇄에 돌입하면서 이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섰다. 4001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작가와 출판사의 치부마케팅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생 박모(28)씨는 "사실인지 검증도 안 된 얘기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다"며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일방의 주장이 마케팅 효과를 내고 있는 만큼 상업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의 마지막 선택 같아 '르윈스키 스캔들'이 생각난다', '대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폭로하면 그것으로 끝은 아니지 않나'라는 비판적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신씨도 어떻게든 털어놓고 싶은 게 있었겠지', '책 아니면 신씨 말 누가 들어줬겠나' 등 신씨나 출판사 입장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다.김효진 기자 hjn2529@<ⓒ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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