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공병호 지음 / 해냄 / 1만3800원범 삼성가였던 새한그룹이 몰락했을 당시 뒷얘기 하나. 유동성 위기에 빠진 새한그룹 이재관 부회장이 2000년 3월 삼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만나고 신이 나서 돌아왔다. 삼성이 자금 지원을 해달라는 조카의 부탁에 삼촌이 승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재관 회장은 "삼촌이 경산공장 땅을 구입하는 등으로 새한을 돕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재관 회장은 자금 지원을 못 받았다. 삼성 임원들이 '노'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새한그룹 지원은 내부거래에 해당돼 불법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새한그룹은 쓰러졌다. 공병호 경영연구소장은 이재관 회장에게 "원래 세상이 다 그래요"라고 충고한다. 민감한 일에 윗사람은 '예스'해도 아랫사람은 '노'하는 게 세상살이다.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이재관 회장이 이를 잘 몰랐던 것이다.공 소장은 거대 기업 새한그룹의 몰락에서 경영 2세들에게 조직 관리의 철칙을 읽혀준다. 젊은 경영 2세들은 성과를 빨리 보여줘야한다는 의욕에 잡혀 판단 착오를 저지른다. 새한은 1995년 필름 사업에 1조원의 돈을 투자했다가 4000억원을 날려버렸다. 공장설비는 일본 기업 도레이에 고스란히 넘겨줬다. 이 과정에서 '오너가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던 측근'은 목이 달아났다.남은 건 '제 몫 챙기기'에 능숙한 노회한 가신이었다. 이들은 자기 회사를 설립하고 계열 협력사로 정해서는 지원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은퇴 이후를 대비했다. 공 소장은 이에 대해 "2세 경영자는 곁에 누구를 둬야 하는지를 늘 고심해야한다"고 조언한다.또 40~50세 전후 남자들의 갖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 역시 경계해야하는 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에 뛰어든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그 예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다른 길을 가면 어떨까' 같은 고민을 하다가 정치나 공직에 뛰어들지만 패착으로 귀결된다는 게 공 소장의 지적이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는 없다. 아버지 김성곤 회장이 공화당 정권하에서 야당 국회의원을 지내다 한번의 오판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는데도 김석원 회장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한 가지 더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 봐야할 부분도 있다. 조직관리에서 지나친 이상주의는 위험하다는 경고다. 신호그룹 이순국 회장은 1987년 자기 지분의 무려 60%를 임직원에게 공짜로 넘겨줬다. 이를 종업원의 근로복지기금(홍익근로복지기금)으로 출연한 것이다. 홍익사회 구현이란 믿음을 가진 이순국 회장의 선의로 한 행위였겠지만, 이는 외환위기 중에 그룹 경영권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된다.공 소장은 이외에도 "객관적 의사결정을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라"는 조언도 추가한다. 그러나 그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은 '살아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존'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그 다음에 비로소 성장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박현준 기자 hjunpark@<ⓒ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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