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글로벌 리스크, 뒤집으면 기회다

지난 주말의 기록적으로 매서웠던 날씨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마음이 무척이나 추웠던 때를 생각나게 했다. 당시 우리는 아시아발 금융위기로 혹독한 고통 속에 남의 손에 이끌려 '소 잃은 외양간'을 고쳤다. 이번의 미국발 금융위기의 경우에는 위험한 금융기법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덕에 타격을 덜 받기는 했지만 외환위기 때와는 여러모로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우선 글로벌 위기로 번지다 보니 주요 20개국(G20) 국가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국제 공조가 이뤄졌으며 우리나라도 스스로 과감하고 신속한 위기 대응으로 비교적 빨리 위기를 극복했다. 우리의 위기 극복 사례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무디스 등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에는 G20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미국ㆍ영국ㆍ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된 것은 나라의 격을 높이고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및 환율 갈등 해소 등 '코리아 이니셔티브(한국이 주도한 계획)'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국제적 기준을 정립하는 데 처음으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향후 우리나라는 국제금융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제기준 도출 과정에서 국익을 지킬 수 있는 토대라는 막대한 무형의 자산을 얻었다.  어찌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우리나라가 한층 건강해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독감을 앓고 나면 더욱 튼튼해지듯이 우리나라의 주가지수는 위기 이전보다 약 38% 상승했다. 시장의 크기를 의미하는 시가총액도 세계 15위에서 13위로 올랐다.  또한 남유럽의 재정위기 및 북한의 연평도 도발 등 대내외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G20 의장국으로서 높아진 위상과 우리 경제의 거시지표(펀더멘털)에 대한 대내외 신인도 개선이 맞물려 한국 금융이 세계 무대로 본격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셈이다.  앞으로 신흥국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해외 진출을 적극 모색해 지난 금융위기를 단순한 '위기'가 아닌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위험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밖으로는 경기회복 지연 및 남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세계 경제성장이 올해만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안으로는 가계부채ㆍ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ㆍ외국 자본의 유출입 변동성 확대 등이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국내 경제 여건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2003년의 신용카드 사태와 같이 금융회사들이 무분별한 외형 경쟁에 나설 우려도 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금융회사와 감독당국 모두가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최악을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연평도 피격 시 철모가 불타는 줄 모르고 반격 임무에 충실했던 해병의 이야기가 알려진 바 있다. 찰스 페로 예일대 교수는 연평도 해병같이 최악의 환경에서도 맡은 임무를 철저히 완수하는 조직을 '고신뢰 조직(High Reliability Organization)'이라고 명명했다.  우리 금융시장에서도 위험 관리에 철저를 기한다면 많은 고신뢰 조직이 충분히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신묘년 새해가 한국 금융이 국제 무대의 주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첫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석근 금감원 부원장보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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