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미국의 재정적자가 사상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적자를 둘러싼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의 필요성과 지출감소와 증세 등을 통한 적자 축소의 필요성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2차 대전 이래 최대.. 예상은 하회=16일(현지시간) 미국 행정부 발표에 따르면 9월30일로 마감된 2009회계연도의 미국 재정적자는 1조4000억 달러로, 지난해 4590억 달러에 비해 3배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도 9.9%로, 지난해의 3.2%에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연간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어서는 곤란하다고 보고 있다. GDP의 10%에 육박하는 현 재정적자 규모는 세계2차 대전 당시 21.5%를 기록했던 이래 최대 수준이다. 다만 적자규모는 당초 백악관 예산관리국(OMB)과 의회예산국(CBO)이 예상했던 1조8000억 달러와 1조6000억 달러에는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과의 공동 성명에서 “올 초 예상했던 것보다 적자수준이 낮았는데 이는 적은 비용으로 금융 시스템을 복구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명은 하지만 “미래의 재정적자 규모는 너무 클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회복과 더불어 의회와 함께 적자를 적정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눈덩이 적자, 왜?=사상 최대로 불어난 재정적자는 실업자 증가,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 정책 등으로 세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부양책 실시를 위한 재정지출은 크게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오바마 대통령도 할 말은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앞으로 10년간 적자로 전망되는 9조 달러 가운데 5조 달러는 전임 부시행정부의 감세정책,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메디케어 처방약품 법안 통과 등으로 발생했고 나머지 4조 달러는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결과로 인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경제담당 논설위원인 데이빗 윗셀은 이에 대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과거에도 재정적자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특히 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연방정부 부채 규모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미국 경제가 불황 탈출에 한창이던 지난 1980년대 초반, 연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GDP의 30% 미만이었다. 90년대 초반에는 40% 미만이었고 오늘날에는 50%를 넘어섰다. OMB는 10년 뒤 연방정부 부채가 GDP의 4분의3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의 저금리 속에서도 연방정부는 올 회계연도에 NASA 예산의 10배를 넘어서는 1950억 달러를 이자비용으로 지불했다. GDP대비 부채규모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이자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뜻하고, 이 가운데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빠져나가는 금액도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적자도 증세도 싫다' 백악관의 딜레마=현재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며 적자 문제를 뒤로 미룰 것을 요구하는 쪽과 적자로 인한 달러의 지위 악화와 국채 수익률의 가파른 상승 등을 우려하는 쪽으로 양분돼 있다. 백악관은 재정적자에 대해 다소 느긋한 입장이지만 최근 이를 둘러싼 대중의 불안과 공화당의 공세가 커지고 있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WSJ·NBC 뉴스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2%가 빠른 경제성장보다는 적자문제 해결을 우선시 했다. 오재그 국장은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적자를 싫어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싫어한다”며 막상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증세 조치를 취할 경우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우려했다. 아직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재정적자를 어떤 식으로 낮출 것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백악관은 의료보험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기다려보라는 입장이다. 오재그 국장은 “오는 2월 대통령의 예산안이 나올 무렵에 재정적자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좀 더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윗셀은 그러나 “설령 오바마 대통령이 부양책 축소, 지출 제한, 증세 등을 통한 적자 축소 방안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미국 정치권의 재정적인 신뢰가 너무 약해 긴축 정책이 실제로 효력을 나타내리라고 믿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국제경제부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