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가족ㆍ측근들, 병원으로 급히 집결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8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시빈소는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등 옛 동교동계 인사들을 비롯한 측근들이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급히 집결했다.이들은 김 전 대통령과 한평생을 같이한 이른 바 동교동계다. 김 전 대통령이 살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을 중심으로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한 일종의 '가신 그룹'인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의 병실을 지키거나 주변에 머물러왔다. 리틀DJ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1939년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리에서 태어났다. 목포고와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했다. 1967년 6.8총선때 김대중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고 1971년 4.27 대선때 김대중 대통령 후보 경남 조직비서를 담당했다.이어 75년 김대통선생 공보비서를 맡았다가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3차례 투옥(1978∼80년)됐다. 198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1986년 김대중 선생 보좌역,1987년 김대중 후보 특별보좌역 및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상담실장,1988년 평화민주당 정책연구실장 및 국회 정책연구원위원 을 역임하는 등 김 전 대통령의 분신처럼 활동했다. 한 전 대표는 이어 1992년 전남 신안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목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이후 새정치 국민회의 원내총무,총재특보단장,사무총장,당무위원을 역임하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안신안에 출마 3선의 쾌거를 일궈냈다. 한 전 대표는 또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상임고문에 이어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햇다.2004년에는 무안 신안에 출마해 4선의원을 기록했다. 2000년 중국 요녕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2001년 한국항공대학교 명예 이학박사를 각각 받았다. 권 고문은 김대중 대통령과 정치역정을 함께 한 동교동계의 좌장이다. 묘비에 'DJ비서실장'이라고 적는 것이 소망일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다.그는 자기 지역구를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의원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1930년생이다. 목포 여자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다.1963~73년까지 10년동안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을 맡았다.1987년에는 민주당 창당 발기인, 평민당 김대중 총재비서실장을 역임했다. 1988년 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목포에서 평민·민주당 후보로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이후 15대까지 3선을 기록했으나 한보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권 고문은 'DJ의움직이는 심경지도' 'DJ의 분신' 부통령이라는 뜻의 '권부'로 불릴 만큼 DJ와 관계가 유별나다. 그가 DJ를 만난 것은 두라삼이 목포 공립상업학교에 재학중이었던 1943년이다. 권노갑은 자신을'김대중의 신도'라고 불러왔다.나이는 다섯차이지만 형님,아버지,스승이었다.그래서 그를 닮으려 노력했다.죽거든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는 한마디만 비석에 써달라고 했을 정도다. 권노갑은 단지 DJ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 만으로 모진 시련을 겪었다.그는 박정희 정권 이후 2년여의 감옥생활을 했고, 1985년까지 형사들의 미행에 시달렸으며 구청에서 주는 라면과 쌀로 끼니를 해결해야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뒤 영국으로 떠나자 DJ가 1963년에 만든 '한국내외문제연구회'를 부활해 DJ가 정계에 복귀할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남에게 호감을 주는 인간이 되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원래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고 활동적인 성격이어서 목포나 당내에서는 그를 '노가비 형님'으로 불렀다.이른 바 '마당발적 친화력과 인명백과 사전'이라고 부를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한보그룹 비리로구속된데 이어 16대 총선에서 현대그룹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또 구속됐다. 김 전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박지원 의원(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리틀 DJ'로 널리 불렸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그리고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불렸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대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강기정 비서실장, 박병석 정책위의장과 정동영 의원(무소속), 동교동 측근인 남궁진ㆍ최재승ㆍ윤철상 전 의원과 박선숙 민주당 의원 등도 고인 곁을 지킨 측근중의 측근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측근은 박지원 의원이다.그는 김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입원한 지난 16일 이후 병상을 지키고 기자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상황을 브리핑하는 등 과거 대변인의 역할을 자임했다. 1942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박 의원은 목포 문태고와 단국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하고 럭키금성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그러다가 30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해 뉴욕한인회장,미국 한인회 총연합회 회장이 됐다. 이 때 미국 망명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1992년 제 14대 국회에 당선돼 국민회의 시절까지 최장수 대변인을 역임했다.그는 "국회의원을 하면서 해외출장은 물론,부산가는 비행기를 한번도 못타볼 정도로 붙박이가 되어 24시간 대변인으로 살았다"고 말할 정도로 대변인 역할에 충실했다. 그는 아무리 늦게 술자리를 하더라도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총재를 찾아가 보고를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한번도 어긴 적이없었다. 박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천에서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규성 기자 bobo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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