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미스터리 속으로 사라진 남자, 그는 어디로?

[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한 남자가 사라졌다. 자신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고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며,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며, 슬퍼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돌연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 힘겹게 올라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그는 바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묵묵히 사라졌다. 그는 기꺼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다.1. 1995년 2월 1일. 그리고 14년의 행방불명.한 남자가 사라졌다. 이번엔 14년 전의 일이다. 1995년 2월 1일. 대서양 건너 동갑내기 금발머리 청년이 권총자살로 전설이 된 지 10개월 정도 지난 시점. 남자는 머리카락 하나 남기지 않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이다. 기타를 잡고 가사를 쓰던 시절, 그는 스스로를 거리의 미친 전도사라고 불렀다. 묘한 우연이다. 바보라고 자처한 남자가 짧은 글만 남기고 사라지기 몇 달 전 미친 전도사의 남은 친구들은 사라진 남자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글을 음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안경 쓴 남자의 추모사처럼 친구들은 심장이 뛸 때마다 그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사라진 친구가 남긴 활자들에 음표를 교배하며 숨을 불어넣고 생명을 연장시켰다. 영국인 리처드 제임스 에드워즈. 그는 사라진 지 14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일원으로 살아 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사진=소니BMG]

2. 로큰록 역사 최대의 미스터리 사건커트 코베인이 전설이라면 리치 에드워즈는 수수께끼이고 미스터리다. 그는 데뷔 후 성공적인 세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미국 홍보를 떠나기 하루 전 런던의 한 호텔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실종 다음날 호텔 방문을 열었지만 여권과 옷, 노래 가사들이 쓰인 종이의 주인은 찾지 못했다. 단지 친구가 전날 아침 7시에 체크아웃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에드워즈의 행적은 묘연했다. 조사 결과 그는 웨일즈 카디프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들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도시 뉴포트에 나타났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한 택시기사는 뉴포트의 한 호텔에서 그를 태워 그의 고향마을을 다녀온 뒤 세번강 근처의 자동차 정비소에 내려줬다고 말했다. 2월 14일 정비소에서 에드워즈의 차가 버려진 채 발견됐다. 정비소에서 인접한 세번강의 세번교는 한때 자살사건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에드워즈는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모두들 그가 강으로 뛰어내렸다고 추측했다. 에드워즈의 지인들은 그가 자살을 시도할 사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때 그 역시 자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한번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약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강하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낼 것이다." 실종 이후 인도와 스페인령 카나리 제도 등에서 그를 봤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나 증거가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3. 리치 에드워즈, 고독하고 과격한 뮤지션웨일즈의 광부 마을에서 태어난 리치 에드워즈는 10대 시절 '고독한 지식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랭보, 카프카, 샐린저, 골딩, 카뮈 등이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이었다. 여류 천재시인 실비아 플래스도 그 중 하나였다. 잠시 화제를 바꾸자면, 플래스는 여덟 살 때 처음 자살을 시도한 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다 남편과 별거하던 중 서른 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후 46년 뒤인 지난 3월 플래스의 아들 니컬러스 휴즈 역시 마흔일곱의 나이로 자살했다. 대학생 에드워즈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친구들이 결성한 밴드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기타 연주실력은 별볼일 없었지만 난해하고 시적이며 공격적인 가사는 제법 칭찬을 받았다. 에드워즈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정치적인 가사로 90년대식 펑크록 밴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 정치적 올바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 철학적 진보주의 등은 그의 단골 주제였다.리처드 에드워즈는 과격한 행동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독설로 유명해질 무렵 한 음악잡지의 기자가 인터뷰 도중 진정성을 의심하며 그에게 물었다. "진짜(for real) 아니지?" 그는 대답 대신 면도날을 꺼내선 팔뚝에 큼지막하게 '4 REAL'이라고 다섯 글자를 새겼다. 글자 위로 피가 넘쳐 흘렀고 이 사건은 사진과 함께 보도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3년간의 성공적인 활동 뒤 그는 웨일즈 카디프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94년 말 요양원에서 퇴원한 그는 12월 21일 런던 공연에서 마지막 곡을 연주하던 중 기타를 박살내는 '쇼'를 연출했다. 다른 멤버들 역시 무대 장비를 모조리 부숴버려 난장판이 된 이 공연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가장 유명한 라이브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이날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리치의 마지막 연주를 볼 수 있었던 행운아들이었다.

리치 에드워즈(1967~?) [사진=소니BMG]

4. 남은 자들의 상처 그리고 기억리치 에드워즈의 실종사건 후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멤버들은 진지하게 해체를 고민했다. 그러나 이들의 해체를 반대한 건 리치의 가족들이었다. 6개월간의 휴지기간 후 밴드는 3인 체제로 재정비해 활동을 재개했다. 리치의 실종 이후 한층 부드러워진 밴드는 2~3년에 한 장 꼴로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사이 리치의 부모는 지난해 11월 28일 법원의 사망추정 선고를 받아들였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최근 발표한 새 앨범 '저널 포 플레이그 러버스'(Journal for Plague Lovers)는 이들의 아홉 번째 앨범이자 리치의 실종 이후 내놓은 여섯 번째 앨범이다. 모든 곡은 리치가 남긴 가사로만 만들어졌다. 밴드는 여전히 수익금 중 4분의 1을 리치의 계좌로 꾸준히 보내고 있다. 이들의 새 앨범 커버는 비만여성 누드화로 유명한 영국 화가 제니 사빌의 '응시'(Stare)라는 작품이다. 리치를 닮은 그림 속의 소년은 마치 그의 팔뚝처럼 피로 얼룩져 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심장이 뛰고 맥박이 뛸 때마다 그를 기억하겠다는 밴드 멤버들의 의지인 것 같아 가슴이 저려 온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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