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기자
옥수동 극동아파트 앞 독서당터 표지석
독서당은 가로 27.3m, 세로32,76m로, 894㎡(270평)정도이며 남루(경치좋은 한강을 바라보며 시를 읆었던 장소)외 6개 침방 문루 대청 동각 문회당 배당이 있었다. 성동구는 독서당터 표지석 주변에 잔디를 심고 옛 정취가 느껴지도록 소나무를 심어 독서당터 내부를 정비하고 주변에는 회향목과 사철나무 등으로 단장해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도록 입구에 자연석 계단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주변과 조화를 이루게 하며 안내 표지판도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를 병행 표기해 정비된 독서당터에 맞는 디자인으로 새로이 설치된다. 특히 이 곳에는 1986년 10월 15일 보물 제867호로 지정된 독서당계회도가 비치돼 있다.독서당 계회도
독서당계회도는 조선시대 국가의 중요한 인재양성을 위한 독서연구기구인 독서당을 배경으로 그림 그림으로 정철 이이 유성룡 등 9인이 참석한 계회를 그린 것으로 산수배경과 독서당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이곳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수시로 개방한다. 독서당은 조선시대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의 전성기였던 중종 10년에 동호 월송암 서쪽 기슭에 독서당을 착공, 중종 12년 동호독서당을 완공,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이후 동호독서당의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 견해는 남산의 끝자락인 응봉(鷹峯)의 산중턱에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견해는 응봉 아래의 평지에 위치했을 것, 나머지 하나는 현재 응봉으로부터 남동쪽 아래 방향에 있는 옥정초등학교에서 서쪽 편 극동아파트 쪽으로 올라가는 경사지점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뒤로는 응봉이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현 옥수동의 풍광이 뛰어난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동호(두뭇개 앞강) 독서당의 현재 위치는 서울 옥수동 부근으로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질 때까지 학문연구와 도서열람의 도서관기능을 수행했다.독서당 위치도(추정)
이호조 구청장은 "향후 동호독서당이 역사적인 큰 의미가 있고 향후 성동구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자원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역사적 고증을 통해 독서당터를 새롭게 보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