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LB인베와 1.3兆 규모 합작사 추진
해외 VC 출자사업 '초대박'…70곳 신청
국내 VC는 日 진출…현지 법인·공동펀드 결성
국내외 벤처캐피털(VC)의 자본 이동이 격화하고 있다. '오일머니'가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나섰으며 국내 VC들은 일본 시장을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보고 뛰어들고 있다. 한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벤처·스타트업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분위기다.
9일 L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UAE)의 'AIM 글로벌 재단'과 함께 한국 벤처투자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며 "최대 10억달러(약 1조364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중동판 다보스'로 불리는 연례 투자 회의(AIM Congress)에 참여한 이후 나온 성과다. 국내 VC가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UAE가 해외 기관과 합작사 설립에 나선 사례는 그동안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상장 VC인 LB인베스트먼트는 8일 장중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외자본의 잇단 국내 진출 "실력 인정"
10억달러는 국내 VC 업계의 1개 분기 투자금액보다 큰 규모다. 한국VC협회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국내 VC의 신규 투자금액은 9820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9185억원보다 6.9% 증가했다. 특히 인공지능(AI) 활황에 힘입은 ICT 비중이 22.5%에서 29%로 높아졌다. 반등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VC의 자금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원 단위 해외 투자 유치 소식은 업계에 반가운 소식이다.
오일머니뿐만이 아니다. 외국 자본의 국내 벤처·스타트업 관심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그룹은 국내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 접수 현황이 발표된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해외 VC 글로벌 펀드 출자사업 역시 '초대박'이었다. 일반분야에 지난해 45곳보다 55% 증가한 70곳의 해외 VC가 신청했다. 이는 중기부가 2021년 해당 사업을 정시 출자로 전환한 이후 가장 많이 신청한 것이다. 최종 선정된 해외 VC는 모태펀드로부터 출자받은 금액 이상을 한국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이권재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투자과장은 "과거엔 '한국 기업 투자 의무조건' 때문에 부담스러워 신청을 안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그간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다져온 실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했다. 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결과물로 미국의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최고 혁신상을 꼽았다. 이 과장은 "올해 CES 참가국 중에서 최고혁신상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8개)가 한국이며, 그중 7개가 벤처와 스타트업에서 나왔다"며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진출을 많이 하는데 '한국의 실력이 굉장하다'는 소문이 날 정도"라고 했다.
VC '불모지'였던 일본 진출 인기
국내 VC는 국내 벤처·스타트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동시에 해외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특히 최근엔 '일본 열풍'이 거세다. 조원 단위의 운용자산(AUM)을 굴리는 IMM인베스트먼트는 일본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고,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일본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전문 VC인 DNX벤처스에 출자했다. 신한벤처투자의 경우 지난해 최초의 한일 공동 펀드인 신한·GB 퓨처플로 펀드를 결성했다. 한국VC협회가 수시로 진행하는 설문조사에서도 항상 일본은 최선호 해외 진출 국가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는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스타트업 대국' 목표와도 맞물려 있다. 일본은 스타트업 담당상을 신설하고, 스타트업 투자액을 2022년 8700억엔에서 2027년 10조엔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한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깝고, 내수시장이 한국보다 크기 때문에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다는 장점도 매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안대근 지란지교파트너스 대표는 "까다롭다고 소문난 일본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면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정받기 쉽다"며 "사회 전반의 디지털전환(DX)이 늦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댓값도 크다"고 했다. 지란지교그룹은 올해로 일본 진출 20년을 맞이했으며, 일본에서 활발한 사업과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